‘그 영화 어때’ 50번째(!) 레터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로봇 드림’입니다. 이번 레터를 여러분이 열어보실 11일 월욜 아침에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 중일텐데요, ‘로봇 드림’은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 중 하나로 올라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수상할 거 같아서 소개하느냐고요. 아니요. 아마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받을 거 같습니다. 받을 만하죠. 최고의 애니메이터들이 재능을 갈아넣은(그냥 넣은 거 아니고 갈아서 넣은 듯한) 놀라운 작화력이 화면을 뚫고 나올 듯 느껴지니까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도 가능성이 있긴 한데, 대세는 ‘스파이더맨’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오늘의 이 작품 ’로봇 드림’을 꼭 소개해드리고 싶었어요. 아카데미?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가슴에 남는 영화는 트로피로 가려지는 게 아니니까요.

영화 '로봇 드림'에서 주인공 도그와 로봇이 손을 꼬옥 잡고 뉴욕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영화 '원스'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모습이네요.

위의 포스터에서 보시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개와 로봇입니다. 실제 얘기는 개와 로봇하곤 상관없어요. 영화적인 표현일뿐, 사람 얘기입니다. 사랑하는 얘기, 만나고 헤어지는 얘기, 사랑한 후에 남는 얘기.

1980년대 뉴욕에서 혼자 사는 개가 외로워서 로봇을 주문합니다. 뚝딱 조립된 로봇은 곧바로 개의 반쪽이 됩니다. 함께 거리를 거닐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핫도그를 먹고, 스티커 사진을 찍어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브루클린 브릿지 공원은 같이 가고, ‘오즈의 마법사’ 비디오를 보다 잠이 듭니다. 어느날 해변에서 신나게 놀았는데 아뿔싸, 로봇에 물이 들어가 고장이 나버렸네요. 움직이지 못하는 로봇을 두고 집에 돌아온 개, 다음날 공구를 사들고 해변으로 돌아가지만 하필이면 이날부터 폐장. 내년 6월에 오라는 팻말만 달려있고 로봇이 누워있는 모래 해변가는 출입금지입니다. 몰래 들어가려던 개는 경찰에 붙잡혔다 훈방되고 시청에 민원을 넣었다가 거절당하기도 하죠. 체념한 개는 내년에 로봇을 데리러 가는 걸로 마음을 정하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로봇의 얼굴은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채.

로봇은 해변가에 가만히 누워서 개를 기다립니다. 문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꼼짝 못하고 기다려요. 눈에 파묻힌 로봇이 꿈을 꾸는데(제목처럼), 개와 같이 보던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노란길을 따라 걷고 걸어 개의 집에 도착해요. 아니 그런데, 개는 이미 다른 로봇을 만나 걷고 있지 뭐예요. 둘이 함께 듣던 노래(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셉템버’)를 다른 로봇과 듣고 있습니다. 연인들에게 이보다 끔찍한 일이 있을까요. 나와 걷던 거리에서 나와 듣던 노래를, 다른 사람(아니 로봇)과 같이 듣고 있다니. 다행히 꿈입니다.

시간이 흘러, 꿈에서라도 보고 싶던 개를, 로봇은 결국 보게 됩니다. 보긴 보는데... 참. 삶이란, 사랑이란, 왜 우리를 이토록 속절없는 탄식의 안개 너머에서 눈뜨게 하는 것일까요.

영화 '로봇 드림' 초반부 둘이 함께 센트럴파크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습니다. 이 장면부터 나오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셉템버'에 귀기울여주세요.

‘로봇 드림'을 보다가 그 시가 떠올랐네요. ‘사랑은 가고/과거는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네, 박인환(1926~1956)의 시 ‘세월이 가면' 입니다. 이 시를 가사로 쓴 노래도 있죠. 노래 가사는 살짝 다릅니다. ‘사랑은 가도/옛날은 남는 것’ 이렇게 돼있는데요, 저는 가사 버전이 더 좋네요. ‘가고'와 ‘가도', ‘과거'와 ‘옛날'의 차이. 70년 전 서울의 한 시인이 읊은 그 마음이 40년 전 뉴욕의 개와 로봇과도 통하는 신비. 그것이 사랑이고 추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입부에 아카데미상 말씀드렸는데요,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셀린 송의 ‘패스트 라이브즈’가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라있죠. ‘로봇 드림’과 ‘패스트 라이브즈’는 둘 다 뉴욕이 배경이고, 둘 다 브루클린 브릿지가 나옵니다. (뉴욕에선 사람이나 개나 로봇이나 다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데이트를 하나 봅니다) 관계의 타래, 만남과 헤어짐이 들어있다는 점도 공통적인데 저는 ‘로봇 드림’이 더 좋았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용을 써가며 설정한 연극 대본처럼 읽히는 반면, ‘로봇 드림’은 추억이 저절로 써내려간 투명한 서정시 같다고나 할까요. 강추합니다.

‘로봇 드림’에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셉템버’가 매우 중요한 테마곡으로 나옵니다. 둘이 같이 놀 때도 나오고, 혼자서 휘파람 불 때도 나오고, 자장가로 불러주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라면 같은 밴드의 ‘After The Love Has Gone’도 영화에 넣었을 거 같아요. 영화 보고 나서 계속 맴돌았네요. 제목만 듣고선 가물가물하신다고요. 아래에 유튭 링크 붙입니다. 좋은 노래는 같이 들어야죠. 어스, 윈드 앤 파이어를 들으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레터로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