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묵은지 요리는 어떻게 만든 거예요?”
프랑스 보르도의 포이악을 대표하는 와인 ‘샤또 린쉬 바쥬(Chateau Lynch-Bages)’의 오너 쟝 샤를 카즈가 지난달 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한식당 ‘수퍼판’을 방문했습니다. 수퍼판은 명문가 요리선생님으로 유명한 우정욱 요리 연구가가 운영하는 곳. 린쉬 바쥬에서 만든 와인들과 함께한 점심 식사에서 그는 한 요리를 엄지 척하며 한 그릇 뚝딱 비웁니다. 이 요리는 겨울철 묵은지와 한우, 더덕, 밤, 배 등을 듬뿍 넣어 들깨 소스로 버무린 ‘들깨 묵은지 샐러드’입니다.
해외 와이너리 대표들이 방한하는 봄이 오면, 국내 와인 수입업체 관계자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이들과 함께 갈 식당을 고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밥을 먹을 때면 당연히 와인도 함께 합니다. 그런데 와인과 어울리는 한식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은 프렌치나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니면 코리안 바비큐라며 고깃집에 갔습니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 부는 한식 열풍으로 그들이 “한식당을 가고 싶다”고 요청한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한국 전통 김치가 궁금하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한식 경험이 적거나 없는 외국인 손님이라면 ‘수퍼판’을 추천합니다. 서울식으로 시원하고 깔끔한 김치를 만드는 곳입니다. 다른 요리들의 간도 대부분 삼삼하기에 와인과 무난하게 어울립니다.
한식은 기본적으로 양념이 다양하고 간이 세기 때문에 그 맛을 받아줄 수 있는 미국 와인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이라면 프랑스 와인도 괜찮습니다. 특히, ‘린쉬 바쥬’는 차분하고 섬세한 와인입니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는 “농후함 만을 추구하는 작금의 유행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로부터 이어온 전통적인 제조법을 지켜오고 있는 성실한 샤토”라고 했습니다. 이날 방문한 카즈 대표는 린쉬 바쥬를 소유한 카즈 패밀리의 5대손입니다.
한식 경험이 어느 정도 많은 해외 와이너리 대표라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해남천일관’을 추천합니다. 1924년 해남 장터에서 시작한 박성순 할머니의 외손녀가 하는 곳으로 남도식 한정식을 선보입니다. 콜키지 비용만 내면 와인을 들고 갈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네 번이나 찾아간 ‘대통령 맛집’이기도 합니다. 외국인 대표들에게 이 말을 하면 흥미로워 하더라고요.
이곳의 대표 김치는 ‘반지김치’입니다. 소고기 양지머리를 푹 고아서 식힌 다음 기름을 다 걷어내고 낙지, 새우, 표고, 밤 등 갖은 채소를 곁들여 담근 백김치입니다. 고기의 감칠맛과 재료의 깊은맛이 어우러집니다. ‘백김치’라 외국인들에게 그리 맵지도 않고, 와인과도 잘 어울립니다.
남도 음식에 홍어와 낙지가 빠질 수 없습니다. 요즘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산낙지를 먹어 보는 것이 유행인 것을 아시나요? 홍어도 한번 권해보십시오. ‘냄새를 낯설어하지 않을까?’, ‘삭힌 것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할 것은 없습니다. 생선을 삭힌 요리는 북유럽에도 많습니다. 치즈 중에는 홍어보다 더한 냄새를 가진 것도 있습니다. 낯섦은 도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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