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 뉴 조이너스 나잇. /이혜운 기자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신가요?

요즘 20~30대는 ‘코리빙(Coliving)’에 사는 것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1인 가구 1000만 시대. 혼자 살기엔 외롭고, 누군가와 살기엔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의 삶을 공유한다고 하는데요. 한국의 높은 비혼율에 코리빙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돼,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홍콩계 렌탈 하우징 기업인 ‘위브리빙’은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인 KKR과 함께 한국 진출을 준비 중이고요. 영국 ‘콜렉티브’ CEO도 한국 시장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 주요 브랜드들은 글로벌 연기금들을 다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주거 문화를 알려면 살아봐야 하는 것! ‘여기 힙해’가 국내 대표 코리빙 브랜드 ‘맹그로브’와 ‘에피소드’에서 각각 2박 3일씩 살아봤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맹그로브’입니다.

맹그로브 신설

맹그로브는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아들인 정경선 CSO(최고 지속 가능 책임자)가 설립한 임팩트 투자회사 HGI에서 만든 브랜드입니다. 현재는 조강태 대표이사가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누적 투자 유치액은 325억원, 목표는 1000억원으로 알려졌다. 신촌·고성 등 5개 지점에 1000세대 규모로 운영 중입니다.

제가 살아본 곳은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맹그로브 신설점’인데요. 계약 기간이나 방별로 다르지만, 대략 보증금 300만원, 월세는 82만원 정도입니다. 물론 관리비·헬스장·세탁실·시네마룸·공유사무공간 등은 모두 무료고요. 지금부터 그곳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는 기분

퇴근길.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아침부터 하루종일 일하느라 진이 빠졌다. 시끌벅적한 번화가에서 친구를 만나 밥을 먹을 엄두는 안났다. 그러나 빈집에 혼자 들어가 불을 켜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엔 너무 쓸쓸했다.

서울 동대문구 왕산로 22 ‘맹그로브 신설’ 1604호. 오늘부터 3일간 이곳이 나의 집이다. 그러나 16층으로 바로 가지 않고 4층 공용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뉴 조이너 나잇’, 처음 온 주민 환영 행사가 있는 날이다.

맹그로브 '뉴 조이너 나잇'. /이혜운 기자

공용 주방에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만 4개. 먼저 온 주민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식용유·고춧가루 등 조미료는 함께 주방에 두고 쓰고, 새우와 파스타면 등을 가져와 요리한다. 그때 한 친구가 묻는다. “파스타가 양이 많은데, 같이 먹을래?”

새우 파스타에 새우만 20마리. 푸짐한 ‘집 파스타’다. 편안하고 감칠나는 맛. ‘내가 이걸 어디서 먹었더라?’ 몇년 전, 동생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하다 묵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어본 맛이다. 배달 음식으로는 느낄 수 없는 온기 담긴 음식이다.

맹그로브 신설 플렉스룸. /맹그로브

내게 음식을 건넨 이는 소현(21)씨다. 서울로 대학을 오며 시작된 자취 생활. 아무도 없는 타지에서 혼자 덩그러니 사는 것이 너무 외로워 맹그로브에 들어왔다고 했다.

“여기선 공용 공간에 가면 또래들을 만날 수 있으니깐 덜 외로워요. 주민들끼리 단톡방이 있는데 누군가가 ‘김치찌개를 많이 끓였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라며 묻기도 하고. 고향집에서 과일이나 반찬 많이 보내주면, 나눠 먹기도 해요. 헬스장에서 같이 운동도 하고. 자취방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요. 여기서 연애도 많이 한대요. 살다가 눈 맞아 웨딩사진도 여기서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미국 드라마 ‘프렌즈’ 내용이 거짓은 아니라니깐요?”

앞에 있던 외국인 교환학생 레오도 말한다.

“여긴 사람들과 교류하기에 정말 좋아요. 저도 여기 주방에서 요리하다가 친구가 된 주민들이 많아요. 같이 베이킹도 하고, 주변 LP바도 가고. 여기엔 뮤지션도, 작가도, 유튜버들도 많이 살거든요. 저는 그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그들은 제게 영어를 배워요. 숙제하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기도 하고요. 지난번에는 단톡방에서 아프다고 하니깐, 의대생 친구가 답하더라고요.”

◇시네마룸·유튜브 촬영방까지 내 집!

두 시간쯤 흘렀을까. 모두와 인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나만의 공간이 펼쳐진다. 싱글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작은 옷장과 1인용 소파. 침대에 누워 통창으로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서울 땅에 이 정도 공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따르릉”

그때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오후 10시, 급하게 작성해야 할 기사가 있다는 연락이었다. 정장은 파자마로 갈아입고, 화장은 지운 후 지하 2층 ‘코워킹 앤 포커스 존’으로 내려갔다.

맹그로브 신설 코워킹 라운지. /이혜운 기자

평일 밤이었지만 과잠(대학교 과점퍼)을 입고 공부하는 학생들, 일하는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어 모두 주민들이라 안전했다. ‘스터디 카페’ 같지만 시간 제한 없이 무료로 있을 수 있다. ‘요즘 카페마다 콘센트도 없애던데’. 눈치 안 보고 일하다 보니 효율이 더욱 올라가는 것 같았다.

함께 요가를 하는 맹그로브 주민들. /맹그로브

옆 테이블에서 일하던 은교(26)씨는 대전에 살다 서울로 취직하면서 맹그로브에 들어왔다고 했다.

“처음 6개월은 인턴이었거든요? 정식 채용이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신분이라 잠깐 머물 수 있는 여기서 살게 됐어요. 그런데 너무 좋은 거예요. ‘맹그로브 소셜 클럽(MSC)’으로 커피도 배우고, 요가도 하고, 북 토크도 해요. 그러다 보니 2년째 살고 있죠. 코로나 기간에는 재택근무를 하느라 여기서 일했는데 시설이 너무 좋은 거예요. 줌으로 회의할 때도 동료들이 ‘집 너무 예쁘다’고 칭찬하더라고요. 코로나 끝나고는 동료들을 불러 공유 주방에서 파티도 했어요.”

맹그로브 시네마룸. /이혜운 기자

일이 끝나고 나니 벌써 자정. 방으로 들어가긴 아쉬웠다. 시네마룸으로 들어가 빈백(천으로 만든 소파)에 앉아 영화를 봤다. 끝나자, 도서관으로 가 책도 읽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공간이다’ 생각하니 부잣집 저택에 사는 기분이었다.

맹그로브 라이브러리. /맹그로브

◇함께 아침 러닝하고, 루프탑에서 맥주도!

다음날 아침,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한 후 1층 카페 ‘쏘리 낫 쏘리’에 내려와 ‘블랙스노우’ 한 잔을 주문했다. 긴 책상에서는 이미 하루를 시작한 이들이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아침을 먹으려는데 운동복을 입은 친구들이 내려왔다.

카페 '쏘리 낫 쏘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이혜운 기자

“저희는 같이 아침 러닝하는 모임이에요. 끝나고 함께 아침도 만들어 먹어요. 못 일어나면, 집 문을 두드리면 되니깐 참여율은 늘 100%지요.”

그들의 코스는 인근 청계천길. 가끔은 밤길이 예쁜 성북천길도 따라 뛴다고 했다. 끝나고 나면 수제 맥주 전문 펍 타일러에 들려 한잔하고, 로컬 호프 신설동 사람들 테라스에서 성북천 야경을 안주 삼아 한잔 하다보니, 운동하는 만큼 살은 안 빠진다나 어쩐다나.

맹그로브 프로그램들. /이혜운 기자

“이 근처엔 정말 가볼 곳이 많아요. 킹수제만두에서 얼얼한 마라 마파두부도 맛봐야 하고요. 용두동 쭈꾸미 골목에서 원조 나정순할매 쭈꾸미 집도 가야지요. 술마신 다음날엔 55년 전통 해장국 맛집 어머니 대성집이 제격이고요. 한식 캐주얼 ‘소일’에서 소이빈 크림 리조토 먹어보세요. 이 모든게 귀찮고 아깝다면 편의점에서 맥주 캔 하나 사 들고 맹그로브 20층으로 올라가면 돼요. 북한산이 한눈에 보이거든요. 유튜브 채널 ‘맹그로브’ 홈 라디오도 틀어놓으세요. 어울리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나와요.

맹그로브 웰컴 라운지. /맹그로브

그의 말을 듣고 맥주 캔을 사 들고 20층에 올라갔다. 밖이 보이는 소파에 앉아 캔을 따고, 유튜브 음악을 틀었다. 이어폰에서는 아론 테일러의 ‘홈(Home)’이 흘러 나왔다.

“불을 켜두고 기다릴게요/ 당신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하는 일마다 문제가 생기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내가 먼저 말 걸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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