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섭리는 놀랍고도 신비롭습니다. 약육강식의 기본 질서 속에서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밀하게 프로그램돼있어요. 한쪽에 모든 걸 몰아주지 않도록 한거죠. 뱀만 봐도 그래요. 맹독을 품은 독사는 덩치에 한계가 있어 먹을 수 있는 사냥감이 한정돼있어요. 거대한 몸집의 괴물뱀은 옥죄는 힘은 막강하지만 독은 없죠. 눈에 보이는 건 닥치는대로 삼키는 개구리가 덩치까지 컸다면 얼마나 섬뜩했을까요? 무시무시한 덩치에 스피드와 맹독까지 품은 괴수 코모도왕도마뱀의 서식처를 인도양 외딴 섬으로 한정했죠. 이런 절제와 균형이 생태계를 촘촘하고 묵직하게 떠받칩니다.
이 짐승의 덩치가 1㎝만 더 컸더라도, 생태계는 예상치 못한 지옥도로 점철됐을지 모릅니다. 흡혈동물의 대명사 거머리 얘기입니다. 지렁이와 함께 몸이 고리로 이뤄진 환형동물의 양대 산맥이죠. 시커먼 몸색깔에 기다란 몸을 꾸불텅대며 움직이는 비호감 외모에 피를 빨아먹고 사는 섬뜩한 식성까지 갖췄습니다. 이 거머리가 개구리나 메뚜기처럼 총 총 점프를 한다고 상상해봅시다. 우거진 풀숲을 걷고 있는데 별안간 팔뚝으로 튀어오른 거머리가 곧바로 주둥이로 피부를 파고들어가 츱츱 새빨간 피를 주스처럼 들이킨다고 상상해보세요. 불쾌한 상상이 아닌 섬뜩한 현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이야기가 최근 미국 과학잡지 스미스소니언매거진에 실렸습니다. 찰거머리가 아닌 훨훨 날아다니는 날거머리(flying leech) 말입니다.
포덤대 소속 생물학자 마이 패미가 마다가스카르 숲속에서 발견해 촬영을 한 신비의 날거머리 이야기입니다. 인어·유니콘·네시·쓰치노코...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그러나 실체는 확인된 바 없는 전설 속 짐승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이야기로 구체화된 계기는 있어요. 바다를 둥둥 떠다니며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바다소 무리(듀공·매너티)는 인어의 모티브가 됐습니다. 가장 비현실적 외모를 한 외뿔고래의 모습은 유니콘을 연상시킵니다. 네시는 바다뱀이나 대형 장어가 수면에서 꾸불텅대는 모습의 착시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지요. 일본의 요괴 쓰치노코는 알고보니 먹이를 삼킨 뱀이나 네발이 보이지 않는 도마뱀 형상에서 유래된 허상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죠. 날거머리도 이들 전설 속 괴수들의 카테고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어요.
14세기의 전설적인 이슬람 여행가로 지금까지 명성이 자자한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서도 기록이 나오거든요. 그가 실론섬(스리랑카)을 여행할 때 날아다니는 거머리를 두 눈으로 봤다는 겁니다. 이븐 바투타의 명성을 감안하면 그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거나 허튼 소리를 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뭔가를 착시한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도 곤란하고요. 이븐 바투타가 본 것이 정확한 것일 수도 있음을 마이 패미의 촬영 기록이 말해주고 있어요. 2017년 마다가스카르에서 탐사 중이던 패미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놈은 모로 봐도 거머리였어요.
통상적인 거머리의 이동 방법은 이렇습니다. 머리와 꼬리 양 끝을 땅에 붙이고, 꼬리를 머리쪽으로 착 이동합니다. 그렇게 수축된 몸뚱아리를 엔진으로 삼아서 머리를 떼어서 몸을 쭉 피면서 앞으로 쭉 이동합니다. 이 동작을 반복하면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죠. 하지만 이 거머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몸을 수축한 뒤 쭉 펴는 탄성으로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물론 박쥐나 날다람쥐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건 아니고요. 이동하다가 더 지탱할 곳을 찾지 못하자 되돌아가는대신 공중으로 몸을 휙 던진 것이죠. 이런 움직임만 하더라도 환형동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동작입니다. 공중으로 몸을 던질때 이 거머리의 모습은 뒷다리의 점프력으로 활공하는 개구리를 연상케 했어요. 본능적으로 휴대전화 동영상 버튼을 눌렀지만, 화면에 담는데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패미는 이 날거머리의 존재를 확신했고, 6년 뒤 다시 마다가스카르의 숲을 탐사할 때 언제라도 촬영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어요. 그 결과 이렇게 기묘하게 날아오르듯 점프하는 날거머리의 몸짓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탐사가 진행된 마다가스카르는 이븐 바투타가 날거머리를 봤다는 실론섬과 4700㎞ 가량 떨어져있지만 같은 인도양의 섬이라는 점에서 생태적으로 연계돼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로 분류되는 마다가스카르의 생물상이 사실은 아프리카 본토와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이븐 바투타가 봤던 날거머리가 마다가스카르의 날거머리와 근연종일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해주죠. 이 종이 엄연한 신종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이들의 먹잇감이 되는 녀석들은 정말로 목숨을 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논두렁에서 모내기를 하다 다리가 가려워 봤더니, 거머리가 들러붙어 피를 빨고 있더라’는 추억담으로 알려져있는 거머리. 하지만 거머리는 알려진 것 이상으로 흉포한 육식짐승입니다. 고리모양(환형)으로 된 끈적끈적한 몸체에, 암수구분이 없는 자웅동체라는 건 지렁이과 같아요. 하지만 썩은 나뭇잎 등을 꾸역꾸역 먹으며 소화시킨뒤 구린내도 나지 않는 결이 고운 흙으로 땅을 비옥하게 해주는 지렁이와 달리, 거머리는 다른 짐승의 피와 살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이 원초적 육식동물은 식성에 따라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뉩니다.
사람을 포함해 큰 짐승의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쪽쪽 빨아먹는 ‘흡혈거머리’가 있어요. 통상 짐승들은 아래위로 두 개의 턱이 있지만, 거머리는 턱이 세 개 예요. 이 세 턱을 씰룩이면서 살갗을 파고드는 거죠. 피가 아닌 육고기를 탐하는 놈들이 ‘식육거머리’입니다. 먹을 수 있는 거라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죄다 흡입합니다. 최애 메뉴 중 하나가 올챙이 시절을 끝내고 막 뭍으로 올라온 새끼두꺼비입니다. 이들의 동선을 미리 파악해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엉금엉금 이동하는 두꺼비를 덮쳐서 꼬리부터 흡입해 먹어치우는 모습은 섬뜩함을 자아냅니다. 산채로 천천히 빨려들어가는 동시에 강력한 톱니 같은 턱에 몸이 믹서에 갈리듯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까지도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있어요. 한숨과 함께 절로 내뱉게 됩니다. 사람이라서 다행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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