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잠실 야구장을 홈팀으로 삼는 인기 프로야구팀, 국민 반려동물로 사랑받은 판다 푸바오, 월트 디즈니의 인기 캐릭터 곰돌이 푸, 청량음료 광고로 부쩍 친숙해진 북극곰,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끈기의 아이콘 웅녀. 대중매체들에서 그려지는 곰들의 모습은 이처럼 유쾌하고 깜찍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곰은 잡식동물이라는 대명제 역시 이 짐승에게 갖고 있는 막연한 공포감을 덜어주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곰은 사자·호랑이와 같은 맹수입니다. 무섭고 흉포한 사냥꾼이죠. 끊임없이 식인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괴수이기도 해요.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인간과 곰의 생활환경이 겹치면서 맞닥뜨리는 사건이 급증하면서 곰과 마주쳤을때의 매뉴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런 가운데 미국 알래스카에서 들려온 곰 사냥 소식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유타에 거주하는 개 훈련사 타이스 에릭슨은 최근 알래스카주 남쪽에 있는 코디악 섬으로 곰 사냥을 나섰다가 아찔한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몸무게가 450㎏가 넘는 집채만한 코디악곰으로부터 쫓기게 된 거예요. 그가 갖고 있는 대항수단이라곤 10㎜권총 뿐이었습니다. 자칫 곰의 일격에 온몸이 산산이 부서질수도 있는 상황에서 엽사는 곰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탕! 탕! 탕! 숲의 적막을 깬 굉음이 울려퍼지고, 기세등등하던 곰은 비틀거리더니 속절없이 땅으로 거꾸러졌습니다. 그 세발의 총성 덕에 목숨을 건진 에릭슨은 혼이 빠져나간 곰의 몸뚱이를 전리품 삼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곰에겐 안된 일이지만, 그 덕에 곰중의 곰이라고 불리는 코디악 곰의 실체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됐어요.
사자·호랑이에 전혀 꿀리지 않는 맹수이자 괴수인 곰. 이 집안은 크게 두 개의 분파에 걸쳐 8개의 가문으로 모여있어요. 춥고 험한 지형에 사는 북방파에는 다음과 같은 멤버들이 속해있어요. 곰 중에 유일하게 100% 육식을 하면서 후려치기 한방으로 물범 머리통을 으깨는 초강력 파워를 가진 북극곰이 있습니다. 덩치와 파워, 킬러 본능이 북극곰에 필적한 불곰이 있고요. 불곰보다 파워와 덩치에선 밀리지만 여전히 사람에게 위협적인 흑곰(아메리카흑곰)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지리산 숲속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반달가슴곰(아시아흑곰)이 있고요. 반면 습하고 따뜻한 남쪽 지방에 사는 네 개의 곰가문이 남방파를 이뤄요. 우선 두 말할 나위가 필요없는 살아있는 인형, 판다가 있고요. 판다와 묘하게 대조를 이루는 독특한 털색깔을 가진 남미 유일의 곰 안경곰이 있습니다. 꿀집털기를 너무 좋아해 실사판 곰돌이푸를 연상케하는 작달막한 말레이곰과 나무늘보 못지 않게 느릿느릿 움직이는 인도 특산종 느림보곰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느낌이 오지 않나요. 압도적 덩치와 피지컬로 무장한 기세등등한 맹수 곰들이 죄다 북방파에 속해있고, 작고 귀여워 만만한 느낌을 주는 놈들은 대개 남방파라는 거죠. 불곰은 북방파를 대표하는 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맹수 곰이예요. 덥수룩한 갈색 털을 휘날리며 성큼 성큼 두발로 걷는 괴수 말입니다. 곰중의 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선 서식지만 봐도 그래요. 전세계 곰 8개 가문 중 압도적으로 서식지가 넓어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캄차카반도와 사할린섬부터 러시아 영토를 가로지르며 유럽에 이릅니다. 중앙아시아와 몽골, 중국, 그리고 한반도 북부 개마고원까지 아우릅니다. 곰 중에 유일하게 서식지가 세 개의 대륙(아메리카·아시아·유럽)에 걸쳐있습니다. 그래서 서식지에 따라서 별개의 종으로 구분돼 불리기도 해요. 가령 미국 북서부에 사는 그 유명한 회색곰이 있고요. 일본 홋카이도에 사는 종류는 에조불곰이라도 칭하죠. 시베리아 동쪽 끝에 사는 캄차카불곰, 파키스탄·인도·네팔에 걸쳐 사는 히말라야불곰이 있고요. 이들은 사는 곳의 특성에 맞춰 조금씩 생김새가 다릅니다.
이 수많은 불곰중에서도 압도적 피지컬을 자랑하는게 바로 코디악곰이예요. 코디악곰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정의됩니다. 먼저 좁은 의미는 알래스카 본토 남쪽의 코디악섬 일대에 살고 있는 불곰을 말하고요. 좁은 의미는 알래스카 전역에 살고 있는 불곰을 말하죠. 코디악섬이 1만2000년전에 알래스카 본토에서 갈라져나왔고, 실제로 미세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알래스카 본토의 곰과 별개의 종류로 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같은 곰인데도 이른바 ‘회색곰’으로 불리는 미국 본토의 불곰과 차원이 다른 괴수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이 코디악곰의 무시무시한 피지컬부터 살펴볼까요? 네 발로 기어다닐때의 어깨 높이는 1.5m로 성인 여성의 키와 거의 맞먹습니다. 두 발로 일어섰을 때는 키가 3m에 달합니다. 암수의 덩치가 차이가 확연한데 다 자란 암컷 몸무게는 318㎏, 수컷은 무려 635㎏이나 나갑니다. 상상해보세요. 몸무게는 700㎏에 육박하고 키는 3m가 넘는 괴수가 우워어어 울부짖으며 날카롭게 벼려진 뾰족한 발톱을 드러내며 달려오는 상황을요. 불행하고 끔찍한 일이지만 이 괴물 곰은 지역에서 간간히 보고되는 식인 사건에도 연루돼왔습니다.
이야기 앞에 등장하는 개 훈련사가 필사적으로 권총 방아쇠를 당기면서도 아마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동물도감이나 미 야생동물보호당국에서는 이 곰을 ‘잡식성’이라고 소개하지만, 이 단어가 주는 양순한 이미지에 속아넘어가면 절대 안됩니다. 통상적으로 코디악곰의 식단의 64%를 연어가 차지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비린것에만 천착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잡식성이란 건 먹을 수 있다는 건 다 먹는다는 뜻이예요. 와피티사슴이나 염소 같은 제법 덩치 큰 젖먹이짐승까지 거뜬하게 사냥해요. 잡은 사슴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동영상입니다.
섬뜩한 미식가입니다. 연어를 잡으면 가장 먼저 폭풍흡입하는 것이 채 부화되지 못한 알과 대가리 안의 골(bain)입니다. 사슴이나 염소를 산채로 잡았을 때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내장부터 먹어치우고요. 물론 나무열매와 풀줄기 등 채식 비중도 적지 않아요. 그러나 이런 식습관을 봤을 때 잡식이라는 좁은 틀로 정의하기보다는, ‘피와 살을 탐하지만 풀까지 뜯어먹는 괴수’라고 하는데 적당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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