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소도시 플레전턴의 경찰서가 최근 ‘코요테 주의보’를 발령했어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최근 몇 달 간 코요테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수 차례 보고됐는데, 이럴 때마다 고양이가 사라졌다는 거예요. 이런 상황은 특히 해질녘과 동틀녘에 집중됐어요. 인과관계는 확실합니다. 고양이가 코요테에게 물려간거예요. 경찰은 이렇게 당부합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건물 안에다 들이라고요. 그게 다입니다. 맹수 코요테와 주민이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코요테의 도시 출몰을 막기 위해서 어떤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안내 같은 건 없습니다.

이 코요테는 이런 식의 잔혹한 사냥이 처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코요테가 반려견의 입을 문 뒤 재빨리 끌어내 도주하고 있다. /Lone Star Outdoor Show

각자 알아서 반려동물을 지켜내라는 말이죠. 이 간결한 안내문에서 일종의 체념마저 읽힙니다. 결국 이 짐승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거죠. 자칫 변고라도 당한다 한들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도시에서 벌어진 이 짤막한 일은 지구 곳곳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질 태세인 인간 사회를 겨냥한 야생 개의 역습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세상으로 침투하는 야생 개의 단연코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코요테! 이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짧은 동영상이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담긴 미장센은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우선 동영상 장면부터 보실까요?

코요테가 강아지를 물어 사냥하고 있다. /페이스북 @Lone Star Outdoors Show

코요테가 반려견 강아지를 물어갑니다. 개가 개를 사냥하는 순간이예요. 방범카메라에 생생하게 포착된 이 짧은 동영상은 내러티브를 유포하고 있어요. 놈은 숙련되고 경험많으며 교활한 사냥꾼이었습니다. 한 두 번 물어가본 솜씨가 아닙니다. 애완동물이자 야수의 본능이 내포된 강아지의 다음 행동을 정확히 읽었어요. 철문 사이로 코요테가 성큼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강아지는 삽십육계 줄행랑 바로 뒤로 내뺐어야 합니다. 누군가 대피시켜줄 때까지 처절하게 왈왈 짖어대야했죠. 그런데 가련하고 어리석은 이 강아지는 순간적으로 야수의 본능이 발동합니다. 호기심의 본능과 회피 본능의 균형이 일시적으로 무너지고 강아지가 철문 사이로 빼꼼 고개를 드는 순간을 코요테는 놓치지 않았어요. 몇 번 해본 솜씨입니다.

코요테와 늑대의 교잡종 '코이울프'. /Smithsinian Magazine

콱! 코요테의 턱에 강아지의 주둥이가 물리는 순간 게임은 끝났습니다. 이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현실자각이 온 강아지가 철문을 버팀목 삼아 최후의 저항을 해봅니다. 이 찰나의 순간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몸짓이었을 거예요. 놈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짖어댈 수조차 없는 강아지를 은신처로 끌고 가면 된다는 것을요. 최후의 ‘깨갱!’ 소리 하나 내지 못한 채 강아지는 야생의 근력과 완력으로 다져진 코요테의 주둥이에 자신의 주둥이를 헌납당한 채 끌려갑니다. 극적인 반전이 없었다면 이 동영상의 엔딩 씬은 정해져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둘 다 개인데 어찌 개가 개를 먹겠냐고요? 개뿔돋는소리이자 개풀뜯어먹는 소리입니다. 이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사냥전문 매체 론 스타 아웃도어스 쇼(Lonestar Star Outdoors Show)는 이렇게 무미건조한 글을 올려놓았어요.

‘코요테는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적응에 성공한 포식자다. 사람동네에서 찾거나 숲에서 찾거나 고깃덩이는 고깃덩이인 것. 안됐구나. 멍멍아.

두 말 할 것 없이 개는 역대 최고·최강·최대의 반려동물입니다. 맞수로 꼽히는 고양이, 혹은 물고기나 새나 돼지가 이 자리를 꿰찬다는 건 인류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 불가능할겁니다. 그런데 이건 거시적으로 봤을 때 개라는 족속이 지구촌 구석구석을 자기들의 세력권으로 차지하는 ‘빅 픽처’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오대양육대주에서, 극지부터 사바나까지, 땅이 있고 공기가 있는 모든 곳에서 기후에 맞게 스스로를 적응하며 번성해온 이 족속이 마침내에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세상의 지배자 인간의 품속까지 ‘개척’한 것으로도 볼 수 있거든요. 그런 개를 노리고 야생에서 개가 민가로 침투하고, 경찰은 ‘이 흐름을 막을 순 없으니 걍 알아서들 조심하시라’고 알리는 세상입니다.

이 방범카메라 화면은 코요테와 인간의 장기전에서 코요테가 서서히 승리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 품속의 반려동물들을 어떻게 꾀어내어 사냥하는지 경험을 축적했어요. 한편으로는 산지의 늑대, 주택가의 개들과 흘레붙으며 자신들의 씨를 퍼뜨립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코이독(코요테와 개의 교잡종)’과 ‘코이울프(코요테와 늑대의 교잡종)’들이 미국의 산과 강, 도시를 휘젓고 다닙니다. 이 같은 야생개의 적응과 정복은 사실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사이기도 해요.

임팔라를 사냥한 리카온이 숨통도 끊지 않고 산채로 먹기 시작하고 있다. /Mustafa Salvanur Youtube 캡처

우선 야생동물의 본고장 아프리카로 가볼까요? 사자·표범·하이에나 최강으로 꼽히는 맹수들 사이에서 들개 리카온은 전혀 주눅들지 않습니다. 이들이 꼬리를 치켜들고 수십마리 개떼들로 몰려다닐 때는 그 어느 최강 맹수도 필적하지 못해요. 개별 피지컬은 떨어질지언정 이들이 강력한 이유는 ‘협업’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바나의 죽을 때 죽더라도 초식동물들에겐 리카온에게 잡히지 않는게 축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철저하게 무리사냥을 하는 놈들은 먹잇감을 확보하는 순간 육상의 피라냐로 돌변합니다. 우선 동영상을 보실까요?

리카온 무리가 영양을 물가에서 끌어내 산채로 먹어치우고 있다. /페이스북 @Bruno African safari

리카온에게 잡힌 초식동물은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똘망똘망 눈을 뜨면서 제 뱃속이 파헤쳐지고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 지켜봐야 하는 고역을 치러야 합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는데, 제 뱃속에 저런 기관이 있었다는 걸 두 눈뜨고 바라봐야 하는 심정은 참담함이나 공포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사체는 또 하나의 야생개인 청소부 재칼들이 처리할 것입니다. 철저히 스케빈저의 본능으로 살아가다가도 해볼만하다 싶은 먹잇감은 가차없이 습격해 쓰러뜨리는 사냥꾼이기도 합니다.

무리끼리 애정을 표현하는 인도승냥이. 짜임새있는 협업사냥은 아프리카의 리카온과판박이다. /dholes.org

이 리카온의 아시아 버전이라고 불리는 놈들이 인도승냥이입니다. 수십마리씩 무리를 지어다면서 사슴이나 물소 같은 큼지막한 동물을 쓰러뜨린 뒤 곧바로 해체하듯 먹어치우는 습성은 리카온이랑 빼닮았어요. 인도승냥이떼와 마주치면 아시아 맹수의 절대 지존인 호랑이까지도 겁에 질려 도망가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여기서 다시 바다 건너 오세아니아로 가면 딩고가 있어요. 캥거루·코알라·왈라루·왈라비 등 풀뜯는 유대류들이 야생을 장악한 듯 하지만, 이 지역의 최고 포식자는 역시 야생개인 딩고예요. 캥거루와 같은 몸 구조를 가진 유대류이면서 대형 맹수였던 태즈매니이아 호랑이가 지난세기 멸종돼 자취를 감춘뒤 독보적인 야생 포식자가 됐어요.

딩고가 사냥한 물새를 물고 가고 있다. 호주의 토종야생동물로 보호받고 있지만, 원래는 원주민이 데려온 반려견이 야생화한 것이다. /Australia Queensland Government

지금은 토종 야생동물로 정부 당국이 순수 혈통 보존정책까지 있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이 딩고는 ‘아주 오래된 유기견’이에요. 3000~4000년 전쯤 아시아에서 건너와 정착한 원주민이 기르던 개가 야생화된 것으로 추정돼요. 한낱 유기견이 오랜 세월이 숙성된 끝에 야생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것이죠. 이처럼 인간의 득세와 맞물려 많은 야생동물들이 자취를 감추거나 멸종위기로 내몰리고있지만, 한편에선 뛰어난 적응력을 갖춘 짐승들이 환경에 맞춰 진화하며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 상당수가 개과라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지배자가 인간에게서 개로 옮아가는 빅 픽처의 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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