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 습기찬 이 여름. 한국인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소중한 반려자로서 염소의 존재감이 급상승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보양 음식의 대명사였던 보신탕이 개 식용을 금지하는 법제화수순에 따라 급속히 자취를 감추면서 빈 자리를 메우는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거죠. 영양소 뿐 아니라 특유의 식감까지도 개와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인기만점이라고 해요. 때마침 염소의 영어표현인 Goat와 당대 최고의 인물을 뜻하는 GOAT(Greatest of All Times)와도 철자가 같다보니 이래저래 염소는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짐승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이 염소족속의 스태미너 콸콸 넘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화제입니다. 영상 속 놈들의 모습을 보면 ‘저 기운 흡수하려고 그렇게들 염소를 먹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텐데요. 우선 동영상부터 한 번 보실까요?
로키 산맥으로 이름난 콜로라도주에서 하이킹을 즐기던 여성 윈디 밀리포드가 근방에 세워놓은 자동차로 돌아오는 순간, 여성은 예상치 못한 장면에 얼이 빠졌습니다. 차 꼭대기로 올라간 흰 염소가 방방 뛰고 있고, 같은 무리로 보이는 다른 염소는 차 주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어요. 넘치는 스태미나를 주체하지 못해 어떻게든 신체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려는 것처럼 보였죠. 미국 TV방송국 FOX 13 뉴스가 페이스북 계정에 소개한 이 동영상은 두가지 측면에서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해요. 우선 동영상 속 주인공이 눈처럼 흰털을 한 염소라는 점입니다. 촬영장소 콜로라도는 인접한 와이오밍, 그리고 북쪽의 몬태나와 함께 미국에서 제일 가는 산악지대예요. 저 사진 속 주인공이 불곰·흑곰·퓨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동네예요. 게다가 차량 위 구조물이 완충장치를 한 덕에 염소가 올라가 방방 뛰어도 그닥 심각한 피해는 입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에서 차량의 주인이자 하이커인 윈디는 몇분간 염소들이 방방 뛰는 걸 공포심보다는 호기심과 함께 화면에 담을 수 있었죠. 어떻게 저 아담한 몸뚱이로 차 위로 점프할 수 있었는지, 민첩성에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저렇게 호기심에 방방 뛰고 뱅뱅 도는 원동력이 되는 넘치는 스태미나를 생각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염소가 이렇게 저렇게 힘이 넘치는 족속이었나. 이러니 저 기운을 공유하기 위해 사람들이 보양음식 재료로 사랑하는게 아니겠는가.
동영상에 등장하는 놈의 정체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흑염소와 달리 눈처럼 흰 털을 가진 놈의 명칭은 현지에선 산 염소(Mountain Goat).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이름은 흰바위산양입니다. 로키산양이라고도 불러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게 염소와 양의 차이가 과연 무엇인가 따지는 일은 부엉이와 올빼미의 차이는 뭐고, 늑대와 이리·승냥이의 다른 점은 어떤건지를 따지는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한집안의 오륙촌뻘내의 족속들을 부르는 과정에서 어떤 건 양으로, 어떤 건 또 염소로 칭하게 된 거죠. 사실상 산양과 야생염소는 분류학적 동일체라고 여기면 됩니다.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걸쳐있는 북미대륙 북서쪽 고산지대에 주로 서식하지만 지금은 서식지를 동부와 남부로 넓히고 있어요. 번성하고 있다는 얘기죠. 우리는 북아메키리카의 짐승 하면 곰·퓨마·말코손바닥사슴·물소처럼 피와 살을 탐하는 맹수이거나 위풍당당한 풍채를 가진 초식동물부터 생각해요. 하지만 흰바위산양은 숨은 고수라고 부를만합니다. 생김새와 달리 전투력 생존력이 단아한 외모를 초월하거든요. 그리 길지는 않지만 위에서 뒤를 향해 비스듬하게 굽어있는 뿔은 암수에게 다 돋아있는데요. 드센 성질머리와 결합하면 훌륭한 무기가 됩니다. 나무열매와 연어로 연명하던 불곰이 간만에 육고기 만찬을 노리고 놈에게 달려들 때 뿔을 앞세워 들이받아 반격하곤 합니다.
이 공격이 때로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둬서 불곰을 쓰러뜨려 혼을 달아나게 하는 일도 드물지만 벌어져요. 주요 서식지인 북미 산악지대는 야생동물이라도 발 한 걸음 잘못 디뎠다가 자칫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는 험지 투성이인데요. 흰바위산양은 일단 발굽부터 이런 고산지형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직에 가까운 암벽지대에서 발딛기가 확실한 곳을 골라 조심스러우면서도 대담하게 걸음을 내딛습니다. 산 중턱에선 마치 퓨마나 늑대처럼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앉아서 물끄러미 전방을 주시하는 모습도 간간이 보이는데요. 이런 풍모에선 단순한 털달린 짐승 이상의 영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예요. 고산 지대에 사는 동물들은 주기적으로 염분을 섭취해야 하는데, 흰바위산양은 기가 막힌 염분공급원을 알고 있습니다. 등산객의 소변입니다. 트래킹 도중 타오르는 마려움을 참지 못하고 볼일을 보려할 때 소금기를 눈치채고 따라오는 놈들과 마주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드센 공격성과 뛰어난 환경 적응 능력은 전세계의 산양(또는 야생염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기질이 아닌가 싶어요. 일본산양 역시 이따금씩 육식을 하는 반달가슴곰의 표적이 됐을 때 오히려 뿔을 앞세워 선제적 공격을 가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일본산양 역시 우리나라의 산양처럼 천연기념물로 보호돼서 보호를 받고 있어요.
지리산 일대에 복원된 반달가슴곰과 백두대간 일대에 서식하는 산양이 야생에서 마주칠 정도로 개체수가 많았다면 둘이 맞닥뜨리는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처럼 산양 혹은 야생염소라고 부리는 족속들의 특징은 우락부락한 생김새도, 집채만한 덩치도, 휘황찬란한 뿔도 없지만, 다부진 신체 구조와 강인한 생존력으로 대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죠. 이런 강인함이 집약된 종류가 알프스산양이라고도 불리는 샤무아예요. 사람의 손바닥보다도 작은 낭떠러지의 바위면을 디디면서 수직에 가까운 암반지대를 이동하는 장면자체가 소름과 탄성을 자아냅니다. 바위 표면에 단단하게 부착할 수 있는 구조로 돼있는 발굽을 가진 이 산양은 평지를 걸을 때와 비탈을 걸을 때의 걸음걸이가 확연히 다를 정도로 고산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해있어요. 원래는 알프스를 비롯한 유럽과 중앙아시아·카프카스 지역이 주요 서식지이지만, 뜬금없게도 뉴질랜드에서도 번성하고 있어요.
오세아니아 정착민들이 1907년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세프 황제가 선물로 뉴질랜드 정착민들에게 보낸 개체가 뉴질랜드 남섬의 고산 지대에서 완벽히 적응해 제2의 터전이 된 것이죠. 이 샤무아를 대상으로 한 각종 사냥 투어 프로그램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강제 이주’당한 놈들이 생전 처음 겪는 낯선 땅에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정착했는지 짐작가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런 생존력을 가진 놈들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육식동물에게는 피와 살을 제공하는 약자의 위치예요. 사람이라는 절대 강자를 빼더라도 곰·퓨마·스라소니·구름표범·수리 등 곳곳에 포식자가 있어요.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의 몸부림을 치다보니 이렇게 야생의 훌륭한 적응자가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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