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산양 중에서도 고랄은 강인한 생존력으로 이름났습니다. 험지 중의 험지 히말라야를 포함한 험준한 산악지대를 터전으로 삼고 있거든요. 사람이 발을 디딜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천길 낭떠러지에서 꿋꿋이 살아갑니다. 거친 환경일수록 사는게 고달파도 천적에게 노출될 확률은 적어지죠. 그렇다고 그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디서 천적과 마주할지 모르는 구슬픈 운명입니다. 이날도 그랬어요. 고랄에게 아주 괴랄(괴이하고 악랄한)한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뿐인 몸뚱아리가 산산조각나면서 역시 하나뿐인 혼이 육체를 스르르 빠져나가버렸거든요.
강인함으로 단련된 고랄의 신체를 순식간에 죽음 저편으로 밀어넘어뜨린 것은 바로 포식자 검독수리의 발톱과 날갯짓이었습니다. 우아하고 격조있는 몸짓으로 절벽의 이편과 저편을 사뿐 사뿐 뛰어다니던 이 기품있는 산짐승이 순식간에 싱싱한 산양 고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아주 괴랄한 운명을 맞이했던 고랄의 마지막 장면을 담은 가슴아픈 동영상을 먼저 보실까요? 수렵 전문 매체인 필드 앤드 스트림(Field and Stream)이 최근 소개한 인스타그램(natureismetal) 동영상입니다.
검독수리는 숙련된 사냥꾼이었습니다. 먹잇감이 어디 숨어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어요. 소리없는 날갯짓으로 고랄의 위치로 정확히 파고들었습니다. 고랄 역시 경험이 풍부한 사냥감입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빠르게 대비태세를 갖춥니다. 독수리와 눈표범에게 쫓기는 일이 다반사였던 놈은 본능적으로 절벽 안쪽을 향해 파고듭니다. 죽여서 먹으려는 자와 살아서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됩니다. 조금 더 탐욕과 본능에 불탄 자가 승리하기 마련입니다. 살고 싶다는 고랄의 본능적 욕망보다 먹어치우려는 독수리의 본능이 한 뼘쯤 컸습니다.
그 차이로 인해 검독수리는 고랄의 뿔을 움켜쥘 수 있었습니다. 뿔! 아뿔사, 고랄을 고랄답게 만들어주는 이 멋진 뿔은 놈을 지옥문으로 데려다주는 급행열차 티켓이 되고 말았습니다. 검독수리는 남미의 부채머리수리, 동남아시아의 필리핀수리보다 덩치는 작을지언정, 파워와 기술은 결코 ‘넘버쓰리’가 아닙니다. 히말라야와 중앙아시아의 엄혹한 고원을 넘어 대서양을 건너 북미 대륙까지 널리 번성하고 있는 놈들은 어떤 기후와 환경에서도 끝내 먹잇감을 찾아 자신의 식탁앞으로 거두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필살기중의 하나가 바로 드롭킬(drop kill)입니다.
프로레슬링에 드롭킥이 있고, 배드민턴에 드롭샷이 있다면 검독수리의 사냥술에는 드롭킬이 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이 기술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자신보다 무거운 몸집의 사냥감을 낚아챈 뒤 공중을 훨훨 날아가다 적당한 시점에 움켜쥔 발톱을 펴고 놓아줍니다. 마무리는 대지에 맡깁니다. 가련한 고랄은 가장 이상적인 드롭킬 기술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어요. 몸을 안쪽으로 쭉 뻗은 독수리의 발톱에 뿔이 잡혀서 공중을 향해 질질 끌려나가는 그 순간, 놈은 본능적으로 생에서 사로 넘어가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 분명합니다. 매~애애 하고 처절하게 울부짖었을 겁니다. 그 울부짖는 소리는 오히려 검독수리의 살기를 기세등등하게 만들어줬을 겁니다. 킬러에게 자비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고랄의 뿔을 두 발에 움켜진 검독수리가 공중을 향해 푸더덕 날갯짓합니다. 뿔을 잡힌 채 사지가 축 늘어진 고랄의 생애 마지막 비행이 시작됩니다.
혹여나 이 날짐승에게 측은지심이 발동해 목숨을 살려주는 스토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나 기대해야 할 거예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커다란 몸뚱이의 고랄을 움켜쥐고 날아가던 검독수리는 비틀대면서도 정확한 릴리징 포인트(releasing point)를 잡은 뒤 움켜줬던 발톱을 부드럽게 폅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다이빙, 암흑의 번지점프가 시작됩니다. 한 바퀴, 두 바퀴 공중제비를 돈 고랄의 몸뚱이를 맞아주는 것은 대지입니다. 거친 풍파를 견뎌내며 수억만년동안 굳어진 단단한 암반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 순간 대자연은 이 가련한 초식짐승의 목숨을 거둬갑니다. 그리고 혈기왕성한 산짐승은 갓 잡은 싱싱한 고깃덩이가 됐습니다. 이제 털이 뽑히고 찢기고 파헤쳐져 속안에 품고 있던 것들이 끄집어내지고 포식자의 내장을 향해 줄달음질칠 것입니다.
그래도 고랄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숨통이 끊기면서 통각(痛覺)도 정지돼, 목숨이 붙은채로 뜯어먹히는 일만큼은 면했다는 것입니다. 수리와 매를 불문하고 살아있는 사냥감을 사냥한 맹금류는 숨통을 끊어놓고 먹어치우는 자비따윈 베풀지 않습니다. 제 뱃속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생전 처음 보는 자기 안의 것들이 포식자의 입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이런 상황이 차라리 나았을지 모릅니다. 이 고랄이 다음번에는 더 강인한 족속으로 태어나길 바라봅니다. 검독수리가 드롭킬로 새끼 사슴(추정)을 사냥하는 장면을 편집한 페이스북 동영상(Beauty Nature Facebook) 한 번 더 보실까요?
아까 잠깐 설명한대로 검독수리는 수리류 중 드물게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에 걸쳐살고 있어요. 이 중 드롭킬 기술은 주로 알타이 산맥처럼 거친 황야에 살아가는 놈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일대에 살아가는 야생양들은 고랄 말고도 많습니다. 공통점은 뿔을 가졌다는 것이죠. 용맹과 기상을 나타내주는 상징물이기도 한 뿔을 낚아채서 별다른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사냥하는 법을 검독수리는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눈표범과 늑대에게 맞선 뿔이 검독수리와의 대적에서는 무시무시한 리스크가 됐습니다. 섬뜩하고도 오묘한 대자연의 균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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