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운명은 순간의 차이로 결정지을 때가 많습니다. 한끝차이로 행복과 불행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평온한 일상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가 있어요. 그 찰나의 방향이 이끄는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말이죠. 이런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찰나의 순간으로 횡액을 모면한 어느 가족의 아찔한 순간이 담긴 동영상 때문입니다. 지난 23일 미국 코네티컷주의 소도시 심즈버리의 한 주택가의 방범카메라에 생생하게 포착된 장면부터 한번 보실까요?
눈부신 햇살아래 평화롭고 한가로운 일상이 펼쳐집니다. 가족 또는 이웃사촌으로 보이는 여성 두명이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어린 아이 세 명이 공놀이를 하고 있어요. 그중 가장 어려보이는 빨간옷의 남자아이가 외칩니다. “곰이 오고 있어.” 아이의 말을 듣고 뒤돌아본 여성 두 명이 재빨리 일어나서 집으로 들어갑니다. 놈은 아메리카흑곰이었습니다. 이들과 곰과의 거리는 보시다시피 엎어지면 코닿을 정도였어요.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가며 시야에서 사라지고 곰은 어슬렁어슬렁 갈길을 갑니다. ‘숲이 우거진 동네에서 살다보면 가끔 저런 일도 있겠다’고 넘어가기엔 이 장면은 너무나 섬뜩한 ‘만약에~’ 품고 있습니다.
이제 막 말을 배우고 있는 꼬마아이가 자기가 뭘 봤는지 제대로 표현을 못했다면요? 그래서 등뒤로 바로 접근하는 곰을 보지 못했다면요?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공이 곰을 향해 퉁퉁 튕겨져나가면서 곰을 자극했다면요? 무엇보다 곰이 살의(殺意)에 가득차있었다면요? 이런 최악의 가정들을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곰에게 포악한 맹수의 본능이 발동했다면, 화면 속 사람들이 들어간 집도 안전한 대피처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사진 속 집은 나무판자를 덧대 만든 전형적인 목조 건물이에요. 곰이 마음만 먹는다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아메리카흑곰은 불곰과 함께 북미 대륙의 곰세계를 양분하고 있어요. 덩치와 전투력, 포악성 등 각종 괴수의 지표에서 흑곰은 불곰보다 한 수 아래로 치부됩니다. 그건 단순히 불곰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거예요. 사람에게 있어 불곰이나 흑곰이나 똑 같은 무시무시한 맹수입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은 곰에게 습격당했을 경우 불곰이냐 흑곰이냐에 따라 다른 대처방법을 안내합니다. 우선 불곰이 습격할 경우 죽은 척을 해야 한답니다. 배를 땅에 대고 납작 엎드린다음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두 다리는 쫙 펼쳐서 곰이 자기 몸을 뒤집지 어려운 자세를 취합니다. 이런데도 놈이 떠나지 않고 계속 공격하면 그제서야 반격하라는 거죠. 반면 흑곰이 공격할 경우 절대로 죽은 척을 해선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몸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찾아보고 여의차 않을 경우 맞서 싸우되 얼굴, 특히 코와 주둥이를 집중 가격하라는 거죠.
문제는 이런 대처방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이며, 또한 얼마나 많은 보통 사람이 숙지하겠느냐는 거죠. 불곰·흑곰을 막론하고 곰과 사람이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곰의 사람 습격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어요. 목숨까지 잃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본디 곰과 사람이 맞닥뜨리던 장소는 국한돼있었습니다. 험준한 산악지대, 울창한 숲, 인적이 드문 등산로. 곰의 영역으로 사람이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양상이었죠. 지금은 더 이상 아니예요. 청소년들이 축구연습을 하는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인파로 북적이는 상점가를 어슬렁거리고, 담벼락을 넘어와 앞마당 수영장에 풍덩 물을담그고, 이제는 꼬마들이 뛰노는 마당까지 활보할 지경이 됐습니다. 서식지를 파괴한 사람의 탓일까요? 환경보호로 개체수가 폭증하면서 생겨난 역효과일까요?
원인을 따지기에 앞서 분명한 것은 사람과 곰의 위험한 조우가 증가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 동영상이 촬영된 소도시 심즈버리가 있는 코네티컷주는 뉴욕을 품은 뉴욕주, 또다른 대도시 보스턴이 위치한 매사추세츠주 사이에 있어요. 곰·퓨마 등 맹수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으로 알려진 산악지대에 위치한 몬태나·와이오밍·아이다호주 등과 비교하면 엄청난 도회지입니다. 그런데도 최근 지역 내에서 곰이 주택가로 내려와 먹잇감을 찾기 위해 차문을 부수고 들어갔다는 등의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요. 사람과 곰의 공존을 추구한다지만 실제로 사람이 느끼는 건 공포입니다.
곰과 사람의 위험한 조우는 지역을 가리지 않습니다. 보름전에는 서쪽 끝의 캘리포니아에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어요. 로스앤젤레스에서 150㎞떨어진 마을 파인 마운트 클럽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는 개학을 앞두고 수업 준비를 위해 교실에 있다가 잠시 교무실에 다녀오고 나서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교실 안에서 어린 불곰 한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 교사는 긴급하게 남편을 호출해 교실 창문을 두드린 끝에 가까스로 곰을 쫓아냈어요. 주변이 산악지대라 산짐승들이 살고 있느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렇게 떡하니 교실까지 침입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답니다. 불상사 없이 끝났지만, 어린 아이들이 올망졸망 몰려있는 교실에 언제든 불곰이 들이닥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안도의 한숨을 쉴 수 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이 뉴스가 주는 불길함이 또 있어요. 곰과 맞닥뜨렸던 선생님의 성(姓)이 하필 새먼(Salmon·연어)라는 겁니다. 게다가 이 학교의 슬로건이 ‘곰들의 집’이라고 합니다. 그저 우연의 일치이길 바랄 뿐입니다.
미국 전지역에서 사람의 영역에서 곰과 마주치는 일이 이처럼 급증하면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 중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는 곳이 플로리다주입니다. 지난해 플로리다주가 제정한 곰 사냥법안이 지난달 공식 발효됐어요. ‘자기방위법’이라고 명명된 이 법안의 내용은 간결합니다. 어느 누구든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 그리고 반려동물의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경우, 곰을 죽이더라도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곰을 겨냥한 표적법안이예요. 불곰과 흑곰들이 이 법안 내용을 보고 ‘세상에 이런 악법이 도대체 어디있느냐’고 길길이 날뛸지도 모르지만, 폭증하는 곰의 개체수, 곰과 맞닥뜨리는 아찔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이런 입법을 가능케 했습니다.
곰의 인간 습격에 대한 공포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곰의 습격으로 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지를 떠나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일이 되풀이해서 일어나고 있다는게 우려스럽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호랑이·표범·스라소니·불곰 등 숱한 맹수들이 포효했던 자리에 지금은 반달가슴곰이 복원 지역인 지리산에서 맹주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숫자를 불리면서 야생에 정착하고 활동범위도 늘어나면서 미국과 일본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자칫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분명히 점증하고 있죠. 야생에는 높은 담벼락도, 깊은 해자도, 전깃줄이 흐르는 울타리도 없습니다. 사람이 곰의 언어로 행동반경을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할테고요. 당국의 깊고 넓은 정책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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