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왜가리가 자신보다 체구가 작은 왜가리를 잡아먹고 있다. /페이스북 @Mind Bending Nature

세계적인 도심 속 녹지공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포착된 장면이 화제입니다. 왜가리 한마리가 큼지막한 쥐를 사냥한 다음 부리에 한참동안 물고 있다 끝내 목구멍속을 꿀꺽 넘기는 ‘먹방’입니다. 나일롱처럼 늘어나는 목덜미의 윤곽으로 훤히 드러나는 쥐의 몸뚱아리가 섬뜩함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가을이 찾아온 뉴욕의 낭만과 어울리지 않는 이 포식 장면은 어쩌면 지구촌 곳곳에 구축되고 있는 ‘왜가리 제국’의 단면일지도 몰라요.

왜가리가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쥐를 먹어치우고 있다. /페이스북 @ABC7NY

짙고 푸른 몸색깔에 기다란 댕기머리 깃털을 한 왜가리가 S자형 목을 구부리고 빤히 수면 아래를 응시하는 모습은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 됐어요. 생긴건 왜가리의 미니어처인데 목이 짧고 눈주위가 선명한 핏빛인 해오라기, 왜가리처럼 둥근 S자형 목을 갖고 있지만 눈처럼 흰 털색깔의 백로들도 마찬가지죠. 이들 3개 분파로 구성된 왜가리족(族)은 인간의 영향력 속에서도 생존 공간을 날로 확장하며 번성에 번성을 거듭하고 있는 새의 무리입니다. 믿기 어렵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만 해도 신록이 푸르른 숲과 논, 강과 호수 등에서만 볼 수 있던 여름 철새지만 지금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텃새가 됐어요. 맵시있는 자태와 우아한 날갯짓 때문에 예로부터 귀족 새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이들이 먹고 살아가는 모습은 괴수에 다름아닙니다.

미국에 서식하는 큰푸른왜가리가 호숫가를 날아가고 있다. /United States Fish and Wildlife Service

무시무시하고 잔혹한 사냥꾼이면서 왕성한 대식가인데다가 살아가는 방식도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왜가리·백로·해오라기 등 종류를 불문하고 이들에게는 공통된 사냥 필살기가 있어요. 쥐죽은 듯 가만있다가 먹잇감을 향해서 빛의 속도로 목을 뻗어서 부리로 낚아채는 일명 ‘데스 블로(death blow)’죠. 이 속사포 같은 공격에 물고기·개구리·뱀·도마뱀·가재 등이 걸려듭니다. 몸통이 넙대대한 물고기일 경우 날카로운 뿌리에 몸이 꿰뚫리면서 피가 솟구쳐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3대 분파 중 가장 덩치가 큰 왜가리의 경우 쥐나 토끼, 오리새끼, 심지어 날아가는 비둘기까지도 사냥합니다. 아무리 발버둥하고 몸부림치고 날갯짓을 해봐도 놈들의 부리를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입니다. 놈들은 무리에 걸린 먹잇감의 저항이 심할 때면 바로 물에 푹 담가서 그 자리에서 익사시켜버립니다. 혼이 빠져나가는 몸뚱이가 잔뜩 물을 머금고 축 늘어지지만, 괘념치 않고 물고 있다 끝내는 목구멍으로 탈탈 털어넣지요. 날카로운 부리로 꿰뚫는데는 일가견이 있지만, 먹잇감을 조각내는 용도는 아닙니다.

사냥에 성공한 왜가리의 부리 끝에 물고기의 몸이 꿰여있다. /Jurong Lake Gardens, Singapore

우선 통째로 삼킨 먹이는 무시무시한 소화력으로 새똥으로 분해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느 새보다 훨씬 강력한 농도를 가진 소화액이 분비되지요. 산채로 버둥거리며 왜가리 뱃속으로 들어간 동글동글하고 토실토실한 토끼와 새끼오리들이 퍼붓는 소화액에 절규하면서 산채로 녹아들어가는 목불인견의 참상이 푸른 날갯죽지속에 가려져 벌어지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배출되는 배설물은 여느 새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산성을 지니다보니 자연스럽게 코를 찌르는 냄새를 풍깁니다. 먹잇감 중 일부는 어쩌면 비록 죽은 몸이지만 새똥으로 녹아들기 전에 다시 세상 구경을 할지로 몰라요. 새끼를 기르는 번식철 부모새들은 삼켰던 먹잇감을 토해내 먹이거든요. 흐물흐물하게 삭혀진채 눈을 치켜뜬 물고기 사체들은 말랑하고 부드럽게 짓뭉개져 새끼들의 입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렇게 남은 삭힌 몸뚱아리들은 어미가 다시 낼름 집어삼키죠.

왜가리에게 붙잡힌 가터뱀이 입을 벌리며 저항하고 있다. /Gary Davenport/Friends of Ridgefield Refuge

이렇게 지독한 냄새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신진대사가 벌어지는 왜가리·백로·해오라기들이 둥지를 튼 나무가 배설물의 독성 때문에 허옇게 변해버리곤 하죠. 그 나무의 희생속에 왜가리족들은 종족의 유전자를 대물림하며 생태 하천의 괴수로 무럭무럭 발돋움합니다. 그런데 이들 왜가리족의 둥지 속 풍경은 ‘스위트 홈’과는 거리가 멉니다. 왜가리족은 어느 새 무리보다도 보육 과정에서 카니발리즘(동족 포식)이 활발하게 발견되고 있거든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블리사이드(siblicide), 형제간 살육입니다. 사실 한 배에서 난 동기간에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건 인간의 역사에서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장면이죠. 경영권을 위해, 왕위를 위해, 부와 권력을 위해 처절히 치고받아요. 오죽하면 골육상쟁이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왜가리족의 골육상쟁은 단순하고 적나라하며 엽기적입니다. 우선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라온 동영상부터 보실까요?

새끼 왜가리가 자신보다 체구가 작은 왜가리를 잡아먹고 있다. /페이스북 @Mind Bending Nature

이 해오라기 둥지에서 태어난 네 마리는 애당초 가혹한 생존경쟁에 내던져졌을 운명이었습니다. 추정컨대 네 개의 알은 조금씩 시차를 두고 부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먼저 알껍데기를을 깨고 나와 맏이가 된 놈이 어미가 게워다주는 먹잇감을 독식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한 것이죠. 가장 마지막에 부화한 막내는 생존 레이스 첫출발부터 맨 뒤에 처진 상태였습니다. 둥지는 처절한 싸움터였습니다. 맏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람한 덩치를 갖고 기세등등해집니다. 그러나 날때부터 먹이싸움에서 크게 밀렸던 막내는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면서 만성적 영양부족상태에 놓입니다. 아무리 같은 부모를 둔 동기간이라고 해도 새에게 윤리나 배려, 정(情) 같은 걸 기대하기는 어려운 노릇입니다. 이들에겐 형제·자매도 이기고 밀어내야 할 경쟁상대일뿐인걸요. 놈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가장 약한 놈이 사라지면 그만큼 먹잇감을 차지할 기회는 늘어난다는 것을요. 가장 몸집이 작은 막내가 형·누나가 되는 개체들로부터 시종일관 사납게 쪼임을 당하는 까닭입니다. 혼내고 다그치는게 아니라 정말 죽이려는 거예요. 너죽고 나살자는 거죠.

검은왕관해오라기가 나무에 앉아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Washington Department of Fish and Wildlife

그런데 가장 덩치가 큰 맏이가 여태껏 하지 못했던 섬뜩한 생각을 해내고 바로 실천으로 옮깁니다. 막내를 먹어치우기로 한 거예요. 일석 이조의 효과를 노렸습니다. 우선 먹이경쟁에서 약한 개체를 도태시키면서 나머지 새끼들이 먹이경쟁을 벌여갈 수 있게 됐어요. 뿐만 아닙니다. 눈앞에서 파득거리는 ‘새고기’로 당장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게 됐어요. 무섭게 행동에 옮깁니다. 가장 덩치가 큰 맏이가 골골대는 막내를 향해 부리를 쩍 벌리고 내리꽂습니다. 설마 설마 했던 장면이 펼쳐져요. 먹이를 기다리던 해오라기 새끼가 자신이 먹이가 돼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 개체의 입속으로 처연히 사라집니다. 성체 왜가리족들이 커다란 먹잇감을 삼킬 때 턱과 목 주변 살이 늘어나는 것과 거의 동일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그렇습니다. 이 동족포식을 통해서 왜가리는 엄청난 크기의 먹잇감을 삼키는 법을 어린 시절부터 학습하는 것입니다.

암수 커플로 보이는 백로 한쌍이 목을 부비면서 마치 하트 비슷한 모양이 만들어지고 있다. /Ernesto Gomez. United StateFish and Wildlife Service

가련한 해오라기는 깃털이 제대로 돋기도 전에 천적도 아닌 형제·자매의 뱃속에서 생을 마감하게 됐네요. 일견 잔혹하고 엽기적으로 보이지만, 짐승세상의 눈에선 꼭 그렇게 볼일도 아닙니다. 우선 먹는 입이 하나 줄어들었으니 나머지 세 마리 새끼들은 좀 더 자주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됐어요. 성체로 자라나 생존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겠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막내를 기어이 꾸역꾸역 제 뱃속으로 밀어넣은 삼켜버린 놈은 이 실전테크닉을 경험으로 축적해 뱀과 개구리, 토끼, 오리 등을 꿀떡 꿀떡 삼킬 것입니다. 이 둥지의 주인공 해오라기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왜가리·백로·해오라기 무리의 둥지에서 서열상 앞서는 새끼가 약하고 덩치가 작은 새끼를 먹어치우거나, 영양실조로 죽어버리거나 죽어가는 새끼를 어미가 꿀꺽 삼키는 등의 방식의 동족포식 현상이 연구자들에 의해 목격됐습니다. 이렇게 왜가리족의 일거수일투족이 목격되는 건 그만큼 이들이 인간의 영역으로 터전을 넓혔다는 또하나의 방증일 수도 있어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엄연히 ‘패륜’일 수 밖에 없는 치열하고 살벌한 무리 내 생존경쟁은 이들의 무한번성을 가능케 하는 핵심 동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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