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식의 이름에는 혀로 감각할 수 있는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비엔나 커피’가 그렇다. 우리에겐 주로 휘핑크림을 커피 위에 올린 형태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 맛을 하나로 특징짓기는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오스트리아 비엔나라는 공간이다. 가을비가 한차례 지나간 지금, 지난 2월 겨울의 비엔나를 떠올린다. 비에 젖어 커피의 온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던 날이었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커피 '페어렝겔터(Verlangerter)'. 한국의 아메리카노와 비슷하다. / WienTourismus·Julius Hirtzberger

국립 오페라 극장 등 비엔나 중심지로부터 두 블럭쯤 떨어진 카페 슈바르첸베르크(Cafe Schwarzenberg). 약 10여분 걸었을 뿐인데, 입구에 다다르자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었다. 입구는 깔끔하게 정돈됐음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 재질이 돋보였다. 이 부근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는 것을 애써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엔나 커피는 도시 전체로 이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커피하우스’란 공간이 있다. 일종의 카페 개념인 커피하우스는 18세기 안팎에 비엔나 곳곳에 등장하기 시작, 기업가나 문화예술인 등 주요 인사들이 만나는 장소로 기능했다. 이곳에서 파생된 일련의 문화가 합쳐져 지금의 비엔나 커피가 됐다. 비엔나 커피하우스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비엔나 카페 슈바르첸베르크(Cafe Schwarzenberg) / WienTourismus·Julius Hirtzberger

1860년대 초반 지어진 슈바르첸베르크는 비엔나 링슈트라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하우스다. 슈바르첸베르크를 거친 예술인으로는 오스트리아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1870~1956)이 대표적. 그의 여러 건축 디자인이 여기서 탄생했다. 가게 내부에선 천장 타일과 샹들리에, 그리고 고즈넉한 테이블이 눈을 사로잡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군이 비엔나를 점령하는 동안 이곳의 인테리어가 다소 바뀌었지만, 비엔나 커피하우스의 전통이 곳곳에 숨쉬고 있었다.

한국의 아메리카노와 유사한 ‘페어렝겔터(Verlangerter)’를 주문하자, 커피가 물 한 잔과 함께 나왔다. 물잔 위에 숟가락이 올라간 채로. 물잔과 숟가락은 비엔나 커피를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다. 휘핑크림이 올라간 아인슈패너, 알콜을 곁들인 커피 등 수십가지 커피 메뉴가 있지만, 이런 전통은 어떤 메뉴를 시키든 경험할 수 있다.

테이블 위엔 소금을 비롯한 향신료도 있었다. 식사를 함께 제공하기 때문이다. 비엔나 커피하우스의 이미지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도시의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요소다. 매년 겨울 아침이면 턱시도에 드레스를 입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무도회에서 기나긴 밤을 보낸 다음 첫 끼니에 뿌릴 소금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곳곳에 흩어진 카페를 나침반 삼아 비엔나를 걷다 보면, 전통과 현재가 팽팽하게 대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때 링슈트라세 지역엔 30개 안팎 카페가 있었지만, 이제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정도만 남았다. 1960~1970년대 잇따라 문을 닫았고, 지금은 아이다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비엔나 전역에 들어서 있다. 언뜻 보면 전통 커피가 신참의 공세에 고군분투하며 밀리는 모양새. 그러나 비엔나 커피의 전통을 직접 경험해본다면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른다. 비록 숫자는 작더라도, 거리 곳곳에 이미 그 커피의 향기가 스며들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