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리석은 여우녀석은 경험이 없어 무지하던가, 취향이 변태스럽게 독특하던가 둘 중의 하나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컹크 엉덩이에 제발로 찾아와서 코를 들이밀리가 없죠. 아무리 개 특유의 냄새맡기 본능이 발동했다 해도 말에요. 여간해선 보기 힘든 희귀영상이 한 편 올라왔네요. 미국 콜로라도의 야생동물 보호단체 프레이리 프로텍션 콜로라도(Prairie Protection Colorado)페이스북에 스컹크가 그 악명높은 냄새 공격으로 여우의 혼을 빼놓는 장면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이에요. 우선 보실까요?
찰나의 순간, 전광석화였습니다. 여우가 바짝 쳐든 스컹크의 뒤꽁무니에 주둥이를 갖다대려는 순간 초강력 정전기라도 맞은 듯 황급히 뒤로 물러섭니다. 너무나 빠른 시간에 이뤄졌고, 암흑천지에 찍힌 카메라인만큼 과연 스컹크가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공격을 한게 맞는지 논란도 분분할 듯 싶어요. 하지만 다음 순간 멀찌감치 도망간 여우가 비틀대듯 노려보며 씨근덕거리는 모습을 보면 된통 당했을 공산이 매우 큽니다. 이미 꼬리를 쳐들었을 때 접근할 생각을 말았어야죠. 이런 여우를 보면서 스컹크는 어쩌면 이렇게 조롱할지도 모르겠어요. “빌어먹을 놈의 변태 여우새X같으니. 네놈, 혹시 마조히스트였더냐. 그렇다면 네 코를 찌르는 냄새에 맘껏 취해보거라. 원한다면 얼마든지 뿜어주마. 막힌 코가 뻥 뚫리지 않았더냐. 크홧홧홧!!!”
이 냄새공격으로 인해 악취가 1㎞ 넘게 펴져나갈 겁니다. 반경에 있는 짐승들도 사람들도 코를 감싸쥐고 눈을 찌푸릴거예요. 스컹크가 스컹크했다고 말이죠. 오죽하면 스컹크 냄새 공격에 당하는 걸 별도의 동사표현(스컹크당하다·get skunked)까지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고 많은 짐승 중에 스컹크만 콕 찝어서 세상 모든 악취의 근원으로 몰아가는 것도 조금은 억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사실 ‘고약한 냄새’는 스컹크 무리가 속해있는 족제비족(族)의 공통된 특성이기도 하거든요. 북반구의 괴수 울버린, 하천의 포식자 수달, 나무 위의 사냥꾼 담비, 사바나의 깡패 벌꿀오소리... 생김새도 습성도 저마다 다르지만 ‘족제비족’의 피가 흐르는 놈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고약한 냄새’와 ‘잔혹성’이예요. 이 집안의 본가 적통대손이라고 할 수 있는 족제비부터가 항문 양쪽에 붙어있는 팥알 크기의 한쌍의 항문샘에서 코를 감싸쥐게 만드는 노린내를 풍겨내죠. 여기에 썩은 짐승 냄새를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울버린, 산채로 뜯어먹은 민물고기의 비린내를 몸에 한가득 품은 수달도 만만치 않죠. 그 냄새의 끝판왕 정점에 바로 스컹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족제비족은 또한 잔혹함으로 악명높습니다. 제 길목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숨통을 끊어놓는 습성이 있어요. 이미 뱃속이 먹어치운 샤낭감들의 피와 살로 가득찬데도 죽이고 또 죽입니다.
그렇게 숨통이 끊어진 희생짐승들의 혼이 빠져나가며 이렇게 울부짖는듯해요. “먹지도 않을 거면서 나를 왜 죽였냐”고 말이죠. 그런데 이 잔혹함의 지수에서 스컹크는 맨아랫단입니다. 우선 식단부터 볼까요? 딱정벌레·애벌레·개구리·메뚜기가 주식이에요. 가장 터프한 먹잇감이라고 해봐야 새·쥐 정도입니다. 여느 족제비 무리와 비교하면 ‘초딩입맛’이에요. 남미의 왕수달이 악어 카이만까지 잡아 산채로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고, 울버린이 제 몸뚱이의 갑절인 초거대 메가(mega) 사슴인 말코손바닥 사슴까지 쓰러뜨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앙증맞은 수준입니다.
적어도 족제비 월드에서 스컹크는 여리디 여린 약자입니다. 그러다보니 스컹크를 족제빗과의 일원으로 차이점이 도드드라진다며 별도의 스컹크과로 분류하는 움직임까지 있죠. 실제 그런 분류도 나오고 있고요. 하지만 한 때 곰의 무리에서 제외돼 렛서판다와 같은 무리로 묶였던 대왕판다가 결국 곰과로 재편입된것처럼 스컹크는 기본적으로 족제빗과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오소리·조릴라·벌꿀오소리처럼 스컹크의 습성과 겉모습이 많이 겹치는 족제비 무리가 적지 않은 것을 봐도 그렇고요. 이런 신체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컹크란 놈들은 냄새를 무기화하는 전략을 택했어요. 몸의 냄새샘(취선)에서 풍기는 냄새는 통상 자신의 영역 표시를 하거나, 흘레붙을 때 상대방을 유인하는 향수처럼 사용하죠. 이 기능을 적극적으로 무기화한 놈들이 스컹크입니다. 대략 13종 정도가 알려져있는데, 종류에 따라 패턴이 다르긴 하지만 흑백의 복실복실한 털가죽을 하고 있고 꼬리는 응원술(폼폼)처럼 생겼죠.
스컹크의 냄새 공격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여기저기 광폭하게 싸지르지않습니다. 우선 확실한 경고사인을 보내요. 종류에 따라 조금씩 동작이 틀린데 대체로 이렇습니다. 우선 발로 땅을 쿵쿵 치면서 가까이 오면 큰일난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래도 위험이 제거되지 않으면 꼬리를 쳐들고 꽁무니를 내보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뭐가 뿜어질지 미리 예고를 하는 셈이죠. 그래도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비로소 ‘푸슉’ 기체도 아닌, 액체도 아닌, 찐득하지도, 미끈하지도 않은 것이 분사되어나갑니다. 바람 없는 날에는 최소 4m, 바람의 도움을 받으면 6m 까지 날아갑니다.
1㎞ 밖에서도 코를 찌르는 악취 덩어리가 몇미터 앞에서 정통으로 날아와 꽂혔다고 상상해보세요. 사람을 포함해 일반적인 후각을 갖춘 어지간한 짐승들은 확실한 학습효과가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된통 혼쭐이 나는 상황을 반복해서 겪는데도 유난히 스컹크를 건드리려다 혼쭐나는 족속이 있는 바로 여우가 속한 개들의 무리입니다. 정말 미스터리한 일입니다. 스컹크들에게 분사액은 일종의 ‘탄환’입니다. 일정량을 쏘아대면 동이 나기 때문에 장전이 필요하다는 얘기예요. 온몸으로 냄새를 발산해서 적들을 물리치고 나면 놈들은 다시 탄환 비축을 위해 새둥지와 개구리가 드글대는 냇가를 향해 돌진하겠죠. 든든히 배를 채우고 영양분을 만들어야 장전이 될테니까요.
주 서식지가 북미대륙인만큼 미국에서 스컹크는 일상입니다. 스컹크에게 당했을 때 각종 민간 냄새제거 요법이 온라인을 떠돌고 마트에는 스컹크당한(get skunked) 반려동물 등에 뿌릴 스컹크 냄새 해독제까지 팔고 있는데 100% 효능을 갖춘 약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나봐요. 대처법 중에 가장 눈에 띄는게 ‘어지간해선 피해다녀라’라고 말들 하는 것을 보면 말이죠. 이렇게 ‘그러려니’ 하는 태도가 일상화된 건 스컹크가 농작물을 해치는 벌레와 쥐를 잡아먹는 이로운 짐승의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기 만화 캐릭터로도 만들어지지 않았을까요? 워너브러더스의 장수 만화 시리즈 만화동산(Looney Tunes)과 후속작인 말괄량이뱁스(Tiny Toon Adventures)에는 각각 수컷 스컹크 ‘페페르퓨’와 암컷 스컹크 ‘피피라퓸’이 등장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