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서 살아숨쉬는 생명체는 두 부류예요. 먹히는 자와 먹는자. 전자는 후자를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나고, 후자는 그런 전자를 쫓아다닙니다. 이 영원한 추격전을 동력으로 대자연의 생명의 바퀴가 우직하게 굴러갑니다. 먹는 자가 먹히는 자를 제압하는 순간 경우에 따라선 인간의 기준으로는 차마 보지 못할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바로 이 장면처럼요. 피와 살과 내장을 탐닉하며 배를 불리다가 고개를 쳐들고 카메라를 노려보는 맹수의 살기어린 눈빛이 생생하게 포착됐어요. 인도의 아마추어 생태 사진가 프라즈왈 부즈발라오(Prajwal Bhujbalrao)가 인도의 타도바 안다리 호랑이 보호구역(Tadoba Andhari Tiger Reserve)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이에요.
붉게 타오를듯한 황토빛 몸색깔에 검은 주둥이를 한, 전형적인 갯과 맹수의 풍모예요. 불과 몇시간 전까지 숲을 뛰놀던 초식동물의 몸뚱이가 거꾸러져 발굽은 하늘을 향해 뻗어있어요. 이미 살코기와 내장이 뜯겨져나간채 휑뎅그렁한 뼈의 사이사이에는 피와 살점이 늘어붙어있어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핏줄이 엉겨붙은 사체에서 풍기는 썩은내가 모니터를 뚫고 코를 찌를 듯 합니다. 처연히 쓰러진채 몸뚱이를 포식자에게 내어준 비련한 희생물은 삼바 사슴, 그리고 입에 앙다문 뼛조각까지 씹어먹을 기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전방을 응시하는 포식자의 이름은 돌(dhole)입니다. 사는 곳이 인도를 중심으로 집중돼있어서 인도 승냥이 혹은 인도 들개(Indian Wild Dog)라고도 하지요. 시선에 따라 붉게도 보이는 진한 갈색의 털과 쫑긋 선 세모진 귀, 오똑한 콧날과 거무튀튀한 입주변은 전형적인 갯과 맹수의 풍모예요.
늑대·승냥이·여우·재칼·코요테... 용맹함과 잔학함으로 악명을 떨치는 갯과 맹수들 그 무엇과도 비슷한듯 다른 이 ‘돌’이란 놈들에게는 사실은 섬뜩한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아시아의 리카온’이죠.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수십마리씩 떼로 몰려다니면서 찬탄과 경악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협력사냥과 숨통이 끊기도 전에 먹어치우기 시작하는 포식습성으로 명성과 악명을 함께 떨치는 바로 그 리카온 말이죠. 공교롭게도 리카온의 또 다른 명칭이 아프리카 들개(African Wild Dog)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에 나오는 삼바 사슴의 최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는 얘기입니다. 이 가련한 삼바 사슴은 맹수에게 잡아먹힐 운명이었다면, 차라리 일대의 최고 포식자인 벵골 호랑이에게 사냥당하는게 나았을 것입니다. 호랑이 강력한 앞발로 목뼈를 우지끈 부러뜨리거나, 타의 추종을 불허할 치악력으로 숨통을 끊어놓아 고통없이 혼이 달아났을테니까요. 아니면 영원한 이인자 표범에게 잡히는 것도 그나마 나았을 겁니다. 조금의 시간은 걸리겠지만, 고통이 길게 가지는 않았을테니까요. 어차피 죽을 바에야 고통없이 가는 게 나은 법이죠. 하지만 삼바 사슴은 지독히도 운이 없었습니다. 다름 아닌 돌 무리와 마주쳤던 거예요.
놈들의 사냥방식은 리카온과 빼닮았어요. 개별 개체의 피지컬이 상대적으로 딸리다보니 철저하게 협업을 추구합니다. 수만년이 넘도록 이어지면서 협업 사냥의 DNA가 내재됐어요. 매뉴얼은 이렇습니다. 첫째, 철저히 ‘팀플’을 추구합니다. 단독 사냥은 꿈도 꾸지않는 거죠. 둘째, 쓰러뜨릴 수 있는 타깃을 집중 공략합니다. 삼바사슴이나 문착, 닐가이처럼 적당히 큰 사슴·영양류를 선호하는 까닭이예요. 이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성질이 드센 아시아물소나 가우아(아시아들소)는 어지간해서 건드리지 않습니다. 셋째, 대장의 지시를 따릅니다. 먹잇감을 쫓기 시작해서 쓰러뜨리는 그 순간까지 일사불란하게 우두머리의 리더십에 따라 움직입니다.
돌의 울음소리는 여느 갯과 맹수들보다 톤이 높아요. 여우와 늑대 그 어디쯤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경질적이고 앙칼진데 음흉해요. 이런 톤으로 다양한 소리를 내면서 서로간 의사소통을 하죠. 무리지어 사냥을 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식사거리로 표적이 된 사슴이나 영양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가면서 서로 캥캥 거리면서 울음소리를 주고받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먹잇감 입장에서는 그 포식자의 앙칼진 언어가 더욱 공포스럽게 들릴거예요. 돌의 사냥에는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물소·들소보다 만만한 사슴·영양을 공략합니다. 그 중에서도 어린 새끼나 임신한 암컷 등 약자(弱者)를 노리죠. 야생에 배려나 자비 따위를 어찌 기대하겠습니까.
그렇게 약해서 공략하기 쉬운 타깃을 점찍으면 무자비하게 달려듭니다. 먹잇감이 호수나 연못으로 도망가면, 끈덕지게 기다리는 듯 하다가 허기를 못참겠다는 듯 달려들어서 질질 끌고 나옵니다. 그렇게 먹잇감을 쓰러뜨리면 공포의 잇 얼라이브(eat alive·산채로 먹어치우기)가 시작돼요. 배에서 항문으로 이어지는 가장 연약한 뱃가죽 라인에 발톱과 이빨을 들이밀고 마구 도륙하고 끄집어냅니다. 아직도 의식이 또렷한 가련한 사냥감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 몸속에 어떤 기관이 들어있는지 보면서 최후를 맞는 거죠. 그것도 아주 느릿 느릿.... 그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는 울음통까지 종국에는 포식자의 뱃속으로 넘어가겠죠.
먹잇감이 여리고 연한 새끼일 경우 더욱 처참한 광경에 벌어집니다. 네 발과 머리를 너댓마리의 돌들이 물고 당겨 순식간에 조각냅니다. 야생 버전의 조선시대 거열형이죠. 인간 세상이 아닌 야생에선 약하고 여린게 죄입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더없이 잔혹하고 악랄한 이 같은 식습관은 이들이 포식자이되 최고 포식자는 아닌 까닭과 연관이 있는 걸로 보여요. 호랑이·표범과 같은 상위 포식자들과의 경쟁 구도 속에 가능한 빨리 식사를 끝내기 위해선 고통없이 삶을 마감할 수 있게끔 자비와 배려를 베풀어주는 건 사치스러운 일일테니까요. 돌은 또한 무리 내 동료애가 매우 강한 동물입니다. 허겁지겁 북북 뜯어내 삼킨 살코기나 내장을 제때 밥을 먹지 못한 동료나 어린 새끼들에게 게워줍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신선할 때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빨리 먹어치우는게 중요하죠.
돌은 단순한 포식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사슴과 영향이 비정상적으로 번식해 숲 생태계가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통제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일종의 생태계 파수꾼이죠. 돌이나 리카온의 섬뜩한 트레이드 마크인 ‘잇 얼라이브(eat alive·산채로 먹어치우기)’를 보고 있으면, 한반도가 이들의 서식권역이 아닌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산지가 많고 평야가 많지 않은 지역 특성상 갯과 맹수의 협력 사냥에는 적합하지 않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연결돼있기 때문에 강인한 생존력으로 서식지를 뻗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섬뜩한 상상도 해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극히 낮은 시나리오겠죠. 집단사냥과 살육의 본능은 어쩌면 지구촌 전역에 분포하는 모든 갯과 맹수의 본능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목줄 풀린 개와 마주쳤을 때, 주인 품에 안겨서 사납게 짖어대는 푸들 강아지를 봤을 때, 산에서 빤히 쳐다보는 유기견과 마주쳤을 때 싸한 공포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건 어쩌면 타고난 본성의 맹수인 식육류 앞에서 피식자의 운명을 짊어진 영장류로서 느끼는 공포심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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