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두마리 사진이 나란히 배치됐습니다. 시커먼 얼굴, 흰 주둥이, 퀭한 눈빛은 영락없는 아메리카흑곰의 그것인데 두 사진 속 곰은 묘하게 달라요. 털빛깔·주둥이 모양새·얼굴 윤곽 등 눈을 부릅뜨고 세부적으로 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왼쪽은 수놈, 오른쪽은 암놈입니다. 미국 뉴멕시코주 수렵인 단체인 뉴멕시코 하운즈먼 어소시에이션(New Mexico Houndsmen Association)이 이달 초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사진이에요. 왜 수놈과 암놈을 나란히 견준 사진을 올렸을까요? 사냥꾼들에게 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곰 사냥에 나설 때는 총부리를 수놈에게 들이대고, 암놈과 어린 녀석들은 놔두라는 거죠. 수놈과 암놈의 차이도 깨알같이 안내했어요. 우선 대략적으로 수놈의 덩치가 암놈의 두 배쯤 됩니다. 수놈의 코와 주둥이는 짧고 뭉툭한 반면, 암놈은 좁고 길쭉해요. 수놈의 두 귀는 양옆으로 바짝 서 있지만, 암놈의 귀 한 쌍은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모습이죠. 수놈의 얼굴에는 곳곳에 주름이 패여있고 상처가 가득 나있지만, 암놈 안면부 윤곽은 상대적으로 말끔한 편입니다. 수놈의 몸은 멀리서 보면 육중한 네모꼴인데 반해 암놈은 둥굴고 윤곽진게 과일 배를 연상시켜요. 암수의 구별이 두드러지는 건 ‘작은 볼 일’을 볼 때입니다. 수놈의 소변줄기가 전방을 향해 뻗는 반면, 암놈의 그것은 뒤를 향하죠.
이렇게 암수 생김새의 선행학습을 계도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곰 사냥은 기본적으로 사냥에 나선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행위예요. 사냥개들을 풀고 장총을 걸머지고 숲으로 들어가면서 수컷 곰만 쫓는다는 의지만 가지면 수놈이 짠 하고 나타나 날 쏴봐라 하고 우워어 달려드는게 아니란 말이죠. 긴급한 상황에서는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사살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암놈과 수놈의 생김새를 머릿속에 완벽하게 입력하면, 먼거리에서 보이는 윤곽을 통해서라도 암수 구별을 하고, 암놈이나 암놈과 함께 있을 새끼들은 지나칠 수 있는 상황도 가능해집니다.
곰 사냥 전문 매체인 ‘베어 헌팅 매거진’은 2020년 게재한 ‘수놈 또는 암놈?(Boar or Sow?)’이라는 가이드성 기사에서 좀 더 실용적인 구분법을 제시해요. 곰이 특유의 자세로 두 발 딛고 일어섰을 때, 배와 사타구니 부분을 눈여겨보라고 합니다. 배에서 아랫 부분이 돌출돼있고, 무스를 바른 듯 몇가닥이 삐쭉 나와있으면 수컷입니다. 이 안에 생식기관이 있다는 시그널이예요. 반면 암컷의 경우 젖꼭지 주변이 맨들맨들 할 경우 현재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라는 징후예요. 눈대중으로 봤을 때 어깨와 목 등 상반신 부위가 탄탄하면 수놈, 상대적으로 엉덩이 등 하체의 비중이 크면 암놈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네요. 그러면서 필자는 “많은 사냥꾼들이 곰의 성별(the gender of the bear)에 개의치 않아 하지만, 여러 선택지가 있을 경우 수놈을 잡는게 곰의 마릿수 통제와 사냥개체수 관리에 모두 좋다”고 말합니다.
이쯤에서 근본적인 궁금증이 일게 됩니다. 왜 암놈은 살려두고 가능하면 수놈을 쏴죽이라는 걸까요? 긴급 상황에서 신체적 약자를 보호하는 인류 보편적 기준을 야생의 사냥에서도 적용해야 한다는 걸까요? 게다가 사냥한 곰고기를 먹는다고 가정한다면, 소나 돼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분명히 어린 새끼나 암놈의 고기가 더 부드럽고 누린내도 덜 할텐데 말이죠. 인간이 그렇게 이타적인 존재는 아닐 겁니다. 이유는 간명합니다. 수놈을 잡는게 지속 가능한 사냥을 위해서 더 좋다는 거죠. 미국에서는 근본적으로 주 정부의 적법한 허가를 받으면 곰 사냥을 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각 주 정부는 서식 지역의 밀도와 실태 등을 판단해서 포획 가능한 마릿수를 정한 다음에 추첨 등의 방법으로 수렵권을 할당하죠. 이렇게 곰을 잡는 행위를 사냥(hunt)이라는 말보다는 수확(harvest)라고 더 빈번하게 말하는 것도 눈에 띕니다. 가을걷이하듯이 사냥개를 풀고 총부리를 들이대 곰을 잡는다는 거죠.
일견 비정해보일지도 모르지만 곰, 그 중에서도 특히 아메리카흑곰은 개체 수 통제가 필요한 짐승입니다. 주택가나 상점, 학교 등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침입하는 사례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거든요. 그것이 근본적으로 터전을 파괴한 사람의 잘못이든, 나오지 말았어야 할 곳에 출몰한 곰의 귀책사유든 근본적 책임을 묻는 걸 떠나서 사람 목숨이 위협받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겠습니까. 흑곰이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까지 출몰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위의 동영상을 보면 이런 상황이 어느정도 납득이 가실 겁니다. 미국에는 불곰(회색곰)과 흑곰 두 종류의 곰이 사는데 통상 전자를 퓨마·울버린 등과 더불어 생태계 최고 포식자로 보는 반면, 후자는 미국너구리·코요테·보브캣급, 상대적으로 만만한 산짐승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적잖아요. 하지만 불곰 뿐 아니라 흑곰 역시 단 한방의 공격으로 사람 몸뚱이를 으스러뜨릴 수 있는 괴수라는 점을 잊어선 안됩니다. 불곰만큼은 아니지만 흑곰 역시 식인(食人) 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고요. 수렵면허를 허가받고 숲으로 향하는 사냥꾼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인간 본연의 정복욕으로 포식자의 과잉번식을 통제는 매카니즘은 냉정하지만 효율적으로도 볼 수 있고요.
이렇게 진행되는 곰사냥에서 다년간의 경험과 통계치를 통해 일정한 흐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수놈을 잡을 경우 다음해 그 다음해 사냥할 개체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반면, 암놈을 잡을 경우 개체수가 뚝 떨어지면서 동시에 거둔 수확물도 하향곡선을 긋는다는 거죠.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다음해 할당되는 사냥 가능 개체수까지 거꾸러뜨리는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수확물이 임신 중인 곰일 경우 뱃속의 새끼까지 함께 사냥당한다는 점, 육아 중인 곰이라면 기르던 새끼들도 함께 목숨을 잃을 공산이 커진다는 점 등이 개체수의 급감을 이끌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이런 흐름은 단순 추측이 아니라 통계로도 확인됐어요. 바로 위의 그래프가 알래스카 주정부가 최근에 작성한 겁니다. 특정지역에서 수확된 흑곰의 암수 비중, 그리고 전체 마릿수 대비 암놈의 비중과 개체수 증감과의 상관관계를 그린 그래프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냥한 곰 중 암놈의 비중이 가장 높았을 때 포획 개체수가 급락세로 돌아서면서 4년 뒤에는 거의 5분의 1 수준으로 박살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같은 그래프를 제시하면서 알래스카 주정부는 “덩치 큰 수컷 곰을 골라잡는 것은 사냥기회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권고합니다.
통계치 뿐 아니라 생태적 특성도 가급적이면 수놈을 잡으라는 방침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기도 합니다. 우선 누구에게나 친숙한 국민동요 ‘곰 세 마리’를 함께 불러볼까요? 하나, 둘 시이작!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아빠곰 엄마곰 애기곰/아빠곰은 뚱뚱해/엄마곰은 날씬해/애기곰은 너무 귀여워...” 이 노래를 들은 곰 한마리가 채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굴에서 떼굴떼굴 박장대소하며 우워어 포효하며 기어나올지 모르겠어요. “듣기 거북해 죽겠다, 아무리 동요라지만 상상의 나래도 좀 정도껏 펼치라”며 말이죠. ‘아빠곰’이라는 말은 ‘소리 없는 굉음’, ‘달콤한 간장’, ‘뚱뚱한 홀쭉이’같은 모순의 언어입니다. 이건 사실 개목(식육목)에 속하는 맹수 대다수가 가진 특징이기도 해요. 개목에 소속된 맹수 4대 주류 문파(개·고양이·곰·족제비)와 1개 비주류 문파(물범과 물개 등 기각류) 중에서 그나마 그나마 수컷이 육아에 참여하는게 갯과 맹수들이에요. 음흉하고 불길한 이미지의 짐승인 늑대가 암수 공동 양육에 충실하죠. 갈기가 성성한 수사자가 만화나 영화에선 권위와 자상함을 지닌 아버지 같은 존재로 그려지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피비린내나는 쟁투로 점철돼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요.
곰과는 덩치와 파워, 드센 성질머리 등으로 분류했을 때 4강(북극곰·불곰·흑곰·반달곰)과 4약(안경곰·느림보곰·판다·말레이곰)으로 양분됩니다. 어느 종류할 것 없이 번식철 패턴은 비슷합니다. 수컷끼리 서열 싸움을 한 뒤 암컷과 흘레붙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 그리고 암수는 다시 서로 다른 짝을 만나서 꽁무니를 맞대는 패턴이 되풀이되요. 이런 겹짝짓기를 통해 보다 강한 자가 잉태돼 태어나 생존하는 구도가 확립돼요. 면면히 이어진 놈들의 삶의 패턴이죠. 특히 흑곰·불곰·북극곰 등 덩치 큰 개체의 경우 어미와 새끼들로 이뤄진 곰 가족에게 가장 위험한 천적은 다름아닌 동족 수컷입니다. 수놈들이 가장 힘들이지 않고 사냥해서 육질이 부드러운 고기를 즐길 수 있는게 바로 어쩌면 자신의 씨를 받아 태어났을지도 모를 새끼들이거든요. 그러니 곰의 세계는 동요라기보다는 19금(禁) 잔혹극에 가깝습니다. 그 잔혹극에서 버텨내면 숲의 최강자로 우뚝 서는 거구요. 하지만 그 최강자마저도 인간의 통제 안에 장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