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10번째 레터는 영화 ‘하얼빈’입니다. ‘하얼빈’이 천만 될까요 물으신다면, 아니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 지나기 전에 400만은 넘겠지만요. 천만 추세였다면 이미 500만을 넘었어야 합니다. 요즘 천만영화는 열흘에서 2주쯤에 500만을 넘고, 한달 안팎에 천만을 달성합니다. 천만영화가 곧 잘 만든 영화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새부턴가 성공한 흥행 대작의 기준점처럼 여겨지게 됐죠. 저는 ‘하얼빈’을 4번 봤습니다. 시사회날 아이맥스에서 한 번, ‘일반관에서 보면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서 또 한 번, ‘역시 아이맥스로 봐야겠다’ 해서 또또 한번, ‘레터로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체크하자’ 해서 추가로 또 한 번. 처음 봤을 때부터 어리둥절했던 지점은 4번을 보고나서도 그대로더군요. 제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여러분은 어떠실지, 제 생각을 가감없이 보내드립니다.
우선 먼저 강조하고 싶은 부분. ‘하얼빈’은 저의 추천작입니다. 이 영화는 작은 화면에서 보시면 절대 진가를 아실 수 없습니다. 꼭 영화관에서, 가능하면 아이맥스관에서 보시길 추천합니다. 영상이 정말 탁월합니다. 제가 첫눈에 반한 장면이 있는데요, 이토 히로부미가 처음 등장하는 열차 시퀀스에서, 화면 오른쪽에 일본군 장교가 45도 정도 고개를 숙이고 있고, 화면 왼쪽에선 이토 히로부미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빛을 타고 자욱한 담배 연기가 일렁이거든요. 카라바조 같기도 하고 렘브란트 같기도 한 그 장면이 처음 봤던 날 잠자리에 들어서도 생각이 나더군요.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도 떠오르고. 그대로 액자에 끼워 걸어두고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요.
‘하얼빈’은 이 장면 말고도 보다가 저절로 감탄이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신문 기사에서는 홍경표 촬영감독님 인터뷰를 빌어서 영상미에 대해서 썼는데요, 지면이 부족해 못다한 뒷얘기도 있습니다. 홍 감독님 말씀이, 촬영할 때 하늘이 도왔나 싶게 날씨가 거짓말처럼 제작진을 도와줬다고 하더군요. 영화 초반부에 신아산 전투신이 있는데, 거기서 날리는 눈발이 인공눈이 아니고 정말로 쏟아진 눈이라고 하네요. 배우들 대사할 때 눈발이 들이치는데 그게 실제 눈이래요. 전남 광주에서 찍었는데, 오십년 만인지, 십여년 만인지 엄청난 폭설이 감사하게도 ‘하얼빈’을 위해 펑펑 내려줬다고 합니다. 덕분에 CG 없이 진짜 눈밭에서 진흙탕 개싸움하는 장면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거짓말 같은 날씨로 촬영을 도와준 하늘이 도와주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각본입니다. 네, 각본. ‘하얼빈’이 천만을 못 가는 이유, 저는 각본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배우들에, 이 프로덕션인데.
그렇다면 각본이 어디가 어때서 그런가. 여기에서 저의 베프가 ‘하얼빈’을 보고 나서 남긴 세 마디 들어보시겠습니다. “영상이 너무 멋졌어. 이동욱 너무 잘생겼더라. 뮤지컬 영화 같았어.” 저는 이 세 마디가 ‘하얼빈’이 대중에게 소구하는 혹은 소구하지 못하는 포인트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첫째, 영상. 이건 이미 말씀드렸고. 둘째, 잘생긴 이동욱. 이동욱은 독립군 이창섭으로 나오는데요. 이 영화 주인공은 현빈이고, 현빈은 영화 내내 나옵니다. 그런데 관객이 보고나서 주연인 현빈이 아니라, 특별출연이고 분량도 적은 이동욱을 기억하는 거죠. 현빈이 이동욱보다 못생겨서 그럴까요. 아니죠. 안중근이 관객의 마음에 남도록 그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셋째, 뮤지컬 영화인줄 알았다고 한 건 그만큼 음악이 뛰어나다는 거겠고요. 초반 신아산 전투부터 여러 격투신마다 음악이 끌어올리는 몰입감이 대단합니다. 특히 현악기가 고조시키는 긴장감이 강렬해요.
이 세 가지의 성공은 곧 나머지의 아쉬움입니다. 우민호 감독이 누차 말씀하셨는데, ‘하얼빈’은 안중근만 얘기하는게 아니고 동지들의 희생도 말하고자 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안중근은 안일하고 미성숙한 접근으로 독립운동을 동네 소꼽놀이로 만들고, 동지들은 그런 안중근에 발목이 잡혀있습니다. ‘동네 소꼽놀이’는 제 표현이 아니고, 이창섭(이동욱)이 안중근(현빈)을 질타할 때 쓴 표현입니다.
가장 문제적인 캐릭터는 일본군 장교 모리입니다. 애초에 각본가가 시나리오를 쓸 때, 모리라는 인물이 누구고, 어떻게 그려나갈지를 얼마나 심도있고 구체적으로 머리 속에 그려놨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어요. 박훈 배우가 모리 장교를 맡았는데, 외모나 연기력이나 다 준비가 된 듯 보였습니다. 말씀드렸듯 문제는 각본. 저는 모리 대사를 듣다가 강제로 일본어 학습이 됐습니다. 영화를 다 보면 무조건 일본어 한 문장을 외우게 되거든요. “안중근와 도꼬다??!!” 안중근 어딨어?라는 뜻입니다. 모리는 입만 열면 “안중근와 도꼬다?!”를 외칩니다. 하도 들어서, 시사회날 제 수첩에 ‘한번만 더 들으면 백번’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세번째 보던 날엔 정말 몇 번을 말하는지 세어봤습니다. 13번입니다. 모리가 처음으로 “안중근와 도꼬다” 대사를 말한 게 상영 1시간쯤 지나고 나서니까, 나머지 1시간 동안 13번, 약 5분만에 한 번씩 관객은 “안중근 어딨어!!”를 듣게 됩니다. 횟수도 많지만 저 대사가 모리뿐 아니라 동지로 나오는 조우진, 박정민의 대사에까지 나온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안중근와 도꼬다!!” “안동지는 어딨소!!” 2시간 안에 여러 인물을 드러내도록 도들새김하려면 각자 다른 대사를 나눠주기에도 부족한데, 다들 똑같이 “안중근 어딨냐”고만 말하고 있으니.
이 문제는 동지 중 한 명인 공부인(전여빈)에게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전여빈 역시 많지 않은 대사량인데 “먼저간 동지들”만 반복합니다. “먼저간 동지들은 어쩝니까”부터 “먼저간 동지들이 도와줄 거에요” 등등. 이것도 세어봤습니다. 5번까지 세다가 놓쳤습니다. “안중근와 도꼬다” 세다가 헷갈려서요. 공부인이라는 인물이 누군지 각본가가 확실하게 말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면 이런 단순한 대사만 반복하다 퇴장하게 했을까요. 동지들을 보여주고 싶었다지만 정작 동지들의 각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제된 고민은 없어보였습니다.
사실 동지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안중근은 왜 그렇게 묘사돼야 했는지. 도입부 신아산 전투에서 안중근은 모리를 잡았다가 놓아줍니다. 옆에서 동지들이 “그러면 다시 와서 공격한다”고 말려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고집부리면서 “만국공법을 지켜야 한다”고 풀어줍니다. 이런 태도를 질타하는 것이 이동욱이 연기하는 이창섭입니다. (그러니 이동욱이 더 기억날수밖에요.) 이동욱은 “그깟 공염불에 휩싸여서 동료들의 희생을 수포로 만들 수 없다”고 안중근에 맞서죠. 그래도 안중근은 모리를 풀어주고 모리는 예상대로 다시 와서 막사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켜버립니다. 아마도 각본가 생각엔 이때의 치명적 실수로 안중근이 대오각성해서 이토를 잡으러 나서는 ‘안중근의 비포&애프터’를 이야기의 축으로 끌고 가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안중근은 그 이후에도 여전히 목숨을 건 투사라곤 도저히 볼 수 없는 안일한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동지를 위한다면서 동지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선택을 하니까요. 밀정이 누구인지 색출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다보니 안중근의 목표가 일본군까지 끌어안는 인류애 구현인지, 국제법 준수인지, 동지애 실현인지, 조국 독립인지 오락가락하는 걸로 보이게 되는 거죠.
“안중근와 도꼬다!”가 거의 유일한 대사인 일본군 모리는 이토 히로부미 암살엔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이건 이동욱 대사에도 나와요. “넌 안중근만 찾고, 이토는 관심없구나”라고, 관객이 이해를 못할까봐 떠먹여주듯 읊어주는 대사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안중근에게 목숨을 구걸했다는 사실 때문에 잡아서 죽이고 싶어서 그러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팩트가 아니에요. 모리는 목숨을 구걸한 게 아니라 반대로 “명예롭게 죽게 해달라”고 거듭 청했거든요. 흡입력 있는 악인으로 나왔어야할 일본군이 사실과도 다른 동기를 내세우며 “안중근 어딨냐”고만 외치고 있으니 관객에게 영화가 절절하게 전달될 수 있을까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원고지 100장도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레터가 너무 길어지고 있어 한 가지만 더. 흔히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고 하고, 창작물에 클리셰는 어느 정도 용인되지만, ‘하얼빈’이 인물 묘사나 이야기 전개에서 독창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 보시면 아마 영화 ‘밀정’이 떠오르실 텐데요, 두 영화가 비슷한 대사도 많지만, 아마도 제작진이 고심했을 엔딩까지 비슷해서 저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밀정’ 엔딩은 독립군 단장(이병헌)의 다짐으로 끝납니다.
“우린 실패해도 앞으로 나가야한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한다.”
‘하얼빈’ 엔딩은 안중근의 다짐으로 끝납니다.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함께 걸어갈 것이다. 기어이 나아가서, 모든 것을 준비하면, 반드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불을 들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두 영화 엔딩의 워딩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죠.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면 영화가 다 비슷해야만 하나요. 독립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다른 사람, 다른 생각, 다른 개성이 부딪히면서 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게 아닐지.
새벽에 쓰기 시작한 레터가 너무 길어져서 오늘은 후다닥 여기서 줄입니다. 아침 발송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나버렸네요.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 레터에서 붙이든지 할게요.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