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긴 했어도 가늘고 정교한 프레임(뼈대)으로 구축된 건물엔 현대적이고 엄정한 분위기가 남아 있었어요. 근대 건축 거장들의 초기 걸작을 보는 느낌이었달까요.”
경북 문경시 산양양조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건축가 박희찬(43)은 이곳의 첫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1944년 ‘산양합동주조장’으로 지어진 양조장은 이 지역 광산업과 흥망을 함께하고 1998년 가동을 멈췄다. 박희찬은 최근 문경시에서 진행한 리모델링 작업의 설계를 맡아 문 닫은 양조장(329.56㎡·100평)을 다목적 문화 시설로 변신시켰다. 지난 5월 새로 문을 연 양조장은 올해 한국건축가협회상 ‘베스트7’과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수상을 함께 받았다.
이른바 ‘재생’을 표방하는 건축물은 이제 드물지 않다. 산양양조장은 그중에서도 남길 곳과 손댈 곳을 ‘깨알같이’ 고민한 흔적이 돋보인다. 박희찬은 “옛 분위기를 어떻게 살릴지가 관건이었다”면서도 “일본식 목조건물의 원형을 기계적으로 복원하려고 하진 않았다”고 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현대 기법과 재료로 적극 개입했다는 건축가의 표현에 따르면 “반은 살리고 반은 새로 지은 건물”이다.
사람으로 치면 얼굴에 해당하는 건물의 남쪽 정면은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렸다. 동쪽 측면도 지붕 아래 옛 트러스(부재를 삼각형으로 엮어서 지붕을 받치는 구조물)를 노출시켜 복원했다. 실내 천장에도 트러스를 그대로 드러냈다. 트러스는 하중의 분산이라는 공학적 목적에 충실한 물건이지만 크고 작은 세모꼴의 반복은 명료한 시각적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기능적 조형미’다.
북쪽 후면은 휘어버린 벽을 헐고 새로 세웠다. 작은 돌조각이 촘촘히 박힌 시멘트 벽을 매만지며 박희찬은 “허문 벽에서 나온 골재를 미장공이 흙손으로 두드려 박아넣었다”며 “재료를 이어간다는 의미도 있고, 비슷한 모양을 내는 다른 공법에 비해 비용도 덜 든다”고 했다. 서쪽 측면에는 시멘트 벽돌과 철골로 사무실·기계실을 새로 지었다. “처음에 양조장을 목조로 지은 건 당시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재료여서가 아니었을까요? 그냥 옛 건물을 따라서 이곳에도 목구조를 쓰기보다는 오늘날 그런 재료가 뭘까 생각해 봤습니다.”
꼼꼼한 디테일(세부)에서는 어떤 집념이 느껴진다. 오래된 기둥은 썩은 밑동만 잘라내고 그 자리에 딱 맞게 새 목재를 끼워넣었다. 술을 숙성시키던 ‘사입실’ 벽에 보온을 위해 둘렀던 90㎝ 두께의 왕겨 단열재를 투명한 케이스에 넣어 이곳이 양조장이었음을 기억하게 했다. 건축가협회상 심사위원단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세심한 작업 덕분에 이 건물은 특별한 아우라를 갖게 되었다”며 “건축가가 건물 해체부터 시공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심사평을 남겼다.
박희찬은 “서울과 문경을 50~60번쯤 오간 것 같다”고 했다. 문경시의 역할이 컸다. 문경시 김학국 담당은 “건축가가 설계, 시공, 감리까지 챙겨야 작품이 제대로 나오기 때문에 특별히 부탁을 드렸다”고 했다. 계획 단계부터 수없이 현장을 드나들며 건물을 조사해 상세한 기록을 남긴 점도 독특하다.
개장 후 양조장에선 음악회나 요가 수업 같은 행사가 열렸다. 코로나가 사라지고 만남이 다시 일상이 되면 더 많은 이가 찾게 될 것이다. 양조장은 이제 탁주 대신 그 새로운 활력을 빚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