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될 것인가 빨래로 남을 것인가. 세탁물의 운명은 줄에 걸리는 순간 결정된다. 러시아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하는 시각예술가 헬가 스텐젤이 만들어낸 이 소의 이름은 ‘스무디’. 초원 풍경의 배경지 앞에 빨랫줄을 걸치고 티셔츠와 재킷을 실제 널어 연출했다. 빨래집게로 표현한 쇠뿔도 그럴듯하다.
같은 방법으로 지난해 선보인 말[馬] ‘페가수스’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스무디와 페가수스는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합계 5만건 이상을 기록했고 최근에는 ‘디자인붐’을 비롯한 유명 디자인 웹진에도 소개됐다.
스텐젤은 채소나 그릇 같은 일상의 사물에서 동물 등의 형상을 재기발랄하게 포착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그는 이런 접근법을 ‘집 안의 초현실주의’(household surrealism)라고 부른다. 흔한 물건의 이면에 무한한 예술적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는 생각을 담은 작명이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별 볼 일 없는 물건일수록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채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