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초등학교 강당 쪽에서 불 밝힌 회랑을 바라본 모습. 왼쪽으로 기존 교사(校舍)와 운동장이, 오른쪽에는 다목적 교실 ‘나리재’가 보인다. 회랑은 기존 교사와 강당을 잇는 통로인 동시에 한옥과 큰 마당(운동장)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가 된다. /사진가 김경석(오데뜨 스튜디오)

“어서 와 한옥 도서관은 처음이지^^”

“한옥 도서관! 어떤 건지 무척 궁금해. 완공되면 만나자!”

서울 성북구 정수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기왓장에 쓴 손글씨에는 곧 교정에 들어설 한옥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묻어난다. 이 기와들은 지난해 11월 완공된 한옥 도서관·교실의 용마루(지붕 꼭대기 수평 부분)에 올라갔다. 늠름한 지붕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간직할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획일적이라고 지적받는 학교 건축.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국 어디나 학교는 비슷하게 생겼다. 색다른 디자인을 시도하는 일이 드물고 한옥 교실은 더욱 드물다.

서울 성북구 정수초등학교의 교사(校舍) 옆에 들어선 한옥 교실. 왼쪽의 2층짜리 도서관 '한솔각'과 오른쪽의 단층 특별교실 '나리재'를 회랑이 연결하고 있다. /채민기 기자
특별교실 '나리재' 처마 아래서 작은 마당을 건너 도서관 '한솔각'을 바라본 모습. /사진가 김경석(오데뜨 스튜디오)

그런 가운데 정수초에 한옥 교실이 들어설 수 있었던 건 여러 기관과 전문가가 머리를 맞댄 결과였다. 국토교통부는 이 작업을 통해 한옥 기술을 연구·개발했고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에 새로운 공간을 조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 문화재 보수 설계 전문가(대연종합건축), 젊은 건축가(쿠나도시건축연구소), 한옥과 현대 건축을 아우르는 시공자(현영종합건설)가 참여했다.

이들 사이에서 동양미래대 건축과 장필구 교수가 기획·조정을 맡았다. 전통 건축을 전공한 장 교수는 한국 고건축 용어를 최초로 체계화한 고(故) 장기인 선생의 손자다. 최근 정수초에서 만난 장 교수는 “학생들이 일상에서 한옥을 만나는 기회가 생겼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ㄱ자 형태의 2층짜리 도서관 ‘한솔각’과 단층의 ‘나리재’를 긴 회랑이 연결하고 있다. /장필구 교수

그는 “새로운 한옥을 짓는 게 목표였다”면서 “구체적으로는 현대 건축의 어휘가 한옥에 녹아든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했다. 현대 건축의 접근법처럼 한옥과 다른 공간 사이의 맥락(context)에 주목했다. 한옥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도서관 ‘한솔각’과 다목적 교실 ‘나리재’를 회랑이 연결한 구조다. 기존 교사(校舍)와 강당을 이어 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회랑은 한옥이 생기기 전 교실과 강당을 오가는 아이들이 지나다니던 그늘막 통로 구실을 한다. 장 교수는 “회랑은 한옥과 운동장을 나누지만 담장처럼 차단하진 않는다”면서 “회랑은 한옥과 큰 마당(운동장)의 관계를 설정하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2층 한옥인 한솔각 실내 일부는 1·2층을 터서 계단식 교실을 만들었다. 역시 현대 건축에서 자주 보이지만 한옥에서는 흔치 않은 공간 구성이다.

1·2층을 터서 책꽂이를 겸한 계단식 강의실을 만든 한솔각 내부. 도서관 수업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사진가 김경석(오데뜨 스튜디오)

21세기 한옥답게 현대적인 기법과 재료도 곳곳에 사용했다. 일부 벽을 콘크리트로 만들었고, 나머지는 뼈대를 짜서 단열재를 채우고 합판을 댄 일체형 벽체를 쇠붙이로 기둥에 접합했다. 안전을 고려해 지붕에 내진(耐震) 기와를 얹고, 한솔각 천장에는 얇은 나무판을 겹쳐 압축한 곡보(굽은 보)를 걸었다. 장 교수는 “구조계산이 가능해 ‘공학 목재’라고도 하는 소재”라고 했다.

정수초는 이 교실을 전통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정선영 교무부장은 “서예나 민속놀이, 전통음악을 일반 교실에서 배울 때와 이곳에서 배울 때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했다. “이런 공간이 학교에 함께 있다는 게 아이들에겐 큰 의미입니다. 아니면 고궁이나 사찰까지 가야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아이들은 궁궐에 온 것 같다는 얘기도 많이 합니다. 지금 보면 작은 학교가 어릴 땐 크게만 보였던 것처럼 아이들의 규모 감각은 다르니까요.”

장 교수는 “언젠가는 학교 전체를 한옥으로 짓는 상상도 해 본다”고 했다. “그 학교 학생들은 교문을 들어서서 처마 사이를 누비며 교실로 들어가게 되겠죠?” 채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