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에는 어쩔 수 없는 선입견이 따라다닌다. 몰개성, 회색빛, 삭막함…. 그러나 콘크리트도 콘크리트 나름.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새로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를 보여주는 건축물 두 채가 최근 경기 파주시에 들어섰다. 콘크리트라는 소재가 모양만 자유자재인 게 아니라 때론 바위처럼, 때론 나무처럼 표정도 다채롭게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지난 5월 문을 연 콩치노 콩크리트(Concino Concrete)는 30년 넘게 오디오를 수집해온 치과 의사 오정수씨가 수영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아내 최윤정씨와 운영하는 음악 감상실이다. 울려 퍼진다는 의미의 라틴어 ‘concino’에 건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concrete’를 붙여 이름 지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임진강 전망이 압도적이다. 건축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했던 민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가 맡았다. 그는 “청각(음악)과 시각(경관)이 만나는 곳에서 촉각에 해당할 건축의 역할을 고민했다”면서 “콘크리트라는 소재로 자연 속에 놓인 바위와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별다른 마감이나 장식을 하지 않아 재료의 질감과 구축 과정이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외피에는 시멘트 블록을 가지런히 쌓았다. 외장재로 잘 쓰이지 않는 이 재료가 강 건너 북한이 보이는 이곳에선 독특한 날것의 미감을 연출한다. 민 교수는 “서울이었다면 이렇게 디자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건물 안팎을 시원시원하게 뚫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밖으로 크게 열린 창은 경관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내부의 터진 공간은 음향의 통로가 돼서 실내 어디에 있어도 음악 소리가 잘 들린다. 실내를 비대칭으로 구성하고 메인 홀에 해당하는 공간을 밀폐시키지 않은 것은 자칫 스피커를 ‘모신’ 종교 시설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오정수씨는 “축음기를 포함해 오디오가 100점 이상, LP가 1만장 이상”이라고 했다. 입장료 2만원. 카페나 재즈 클럽과 달리 음료를 팔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한다. 콘크리트가 기억에 남는다고 ‘콩치노 콘크리트’로 입력하면 내비게이션에서 잘 검색되지 않는다.
세별 브루어리(월롱면 위전리)는 맥주 공장으로 기획된 건물이다. 공장 또한 콘크리트만큼이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기 일쑤. 그러나 이곳은 세심한 디자인으로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준공건축물 부문)을 받았고 올해는 미국건축가협회(AIA) 샌프란시스코 지부의 건축부문 영예상(honor award)도 받았다.
건물을 설계한 YKH어소시에이츠 홍태선 대표는 “주재료로 콘크리트를 선택한 것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은 결과”라고 했다. 대신 비교적 값싸고 흔한 재료인 콘크리트를 조금 다르게 사용해 건물의 파사드(앞면)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합판 대신 낙엽송 통나무를 이어 붙여 거푸집을 만들었다. “여기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고, 굳은 뒤에 낙엽송을 떼어 내면 나무껍질 조각이 콘크리트 곳곳에 박히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콘크리트에 나무의 질감이 그대로 새겨진다. 거푸집이 사라진 뒤에도 냉랭하거나 무뚝뚝하지 않은 나무의 존재감이 남는다.
코발트 염료를 섞어 푸르스름한 콘크리트는 빛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을 띤다. 홍 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색상이 조금씩 소실되면서 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공장 입구는 콘크리트 벽면을 일일이 정으로 쪼아 강조하고, 실내의 벽은 매끈하게 다듬었다. 리듬과 셈여림이 변화하는 음악처럼 재료의 질감을 변주(變奏)했다.
홍 대표는 미국 대학에서 전공으로 의학을, 부전공으로 피아노를 공부하다 대학원에서 건축으로 진로를 바꾼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음악과 건축에는 비슷한 면이 많다”면서 “음악가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악기와 사운드를 실험하듯 건축 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