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리 돼지가 각자 지푸라기와 나무, 벽돌로 집을 짓는다. 늑대가 나타나 입김을 불자 짚과 나무로 지은 집은 무너지고 벽돌집만 남는다. 이 유명한 동화는 건축 재료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보여준다. 그런데 나무는 정말 약하고 허술한 재료일까?
아이디에스건축사사무소 배기철·이도형 소장은 최근 펴낸 ‘木의 건축’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현대적 고층 건물에 나무를 더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뜻한 느낌의 마감재로만이 아니라 건물의 뼈대로도 목재를 적극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최근 만난 이들은 “지금까지 감수성 위주로 나무를 선택했다면 이제부터는 더 친환경적 재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고 나무도 좋은 선택지 중 하나”라고 했다. 아이디에스는 10여년 전 국립산림과학원 연구 과제 참여를 계기로 목재에 주목, 경기 수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자원연구소(4층), 경북 영주 공동주택 ‘한그린 목조관’(5층) 등 목조 건물을 설계해왔다.
나무는 왜 친환경적일까. 시멘트·철강 같은 소재를 만드는 자원은 언젠가 고갈되지만 나무는 다시 심을 수 있다. 탄소 절감에도 유리하다. 배기철 소장은 “나무는 탄소를 흡수할 뿐 아니라 저장하기도 한다”면서 “나이가 많아 탄소 흡수력이 떨어진 나무로 건물을 지어 탄소를 그 안에 저장하고, 베어낸 자리에 새 나무를 심으면 새로 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나무를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 이도형 소장은 “나무로 벽체를 만들고 기둥도 세운다”면서 “엘리베이터·계단실 같은 부분은 콘크리트지만 나머지는 나무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나무만 쓰는 게 아니라 목재와 다른 소재의 하이브리드(혼합식) 구조인 셈. 이런 건물은 3~5층 정도가 많고 현재 가장 높은 것은 24층이라고 한다. “기술적으로 40층 정도는 무리가 없지만 경제성을 고려하면 12~20층 사이가 적당하다는 데이터도 나와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나무는 오해와 편견에 시달린다. 우선 나무는 내구성이 약하다는 것. 이들은 “콘크리트로 지어야 튼튼하다고들 생각하는데, 콘크리트 아파트도 길어야 40년이면 허물지 않던가요?”라고 반문했다. 나무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고정관념에 대해선 책에서 숭례문을 반례로 들었다. 화재 발생 약 5시간이 지나서야 붕괴했고 목재 3000여 점은 살아남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나무는 결코 생각처럼 불에 약하지 않다”고 썼다. 한국 나무는 재목감은 못 된다는 인식도 있지만 현대의 목조 건축은 통나무를 그대로 쓰기보다는 원목을 재단·접착해 만든 부재를 사용하는 방식이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배 소장은 “미리 건조해서 변형이 일어나지 않고, 공학적 안정성을 갖춘 나무”라고 했다.
우리의 획일적인 라이프스타일도 한몫했다. “단독주택에서 좀 이익이 된다니까 다세대·다가구로 확 옮겨갔다가, 또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고…. 아파트를 좋아하면서도 어떤 아파트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아파트를 목재로 짓는다는 건 거의 생각도 못 했죠.”
이런 이유로 한국의 목조 건물은 한옥을 비롯한 주택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들어 규모가 커지고 용도도 다양해지고 있다. 경기 여주 해슬리나인브릿지 골프장 클럽하우스는 목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천장부터 기둥으로 이어지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곳. 서울 전농동 배봉산 숲속도서관이나 충남 당진시의회 도서관은 목재 기둥과 보가 실내에 노출되는 중목구조를 활용해 지었다. 아직 지어지지는 않았지만 경기 광명시는 높이 90m의 목조 전망타워 건립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배 소장은 “최근 2~3년 사이 복합 용도의 목조 건물들이 곳곳에서 나왔다”면서 “그러다 보니 아파트를 목조로 지으면 어떨까 생각도 하게 되고,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