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영화 세트장 같잖아?” 자로 잰 듯 깔끔하게 비례 맞춰 디자인한 건물 앞에서 20~30대 젊은이들이 인증샷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곳은 MZ 세대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울공예박물관. 인사동 건너 정독도서관 방향으로 올라가는 감고당길 초입, 옛 풍문여고를 리모델링해 지난해 11월 공식 개관했다.
“한국 박물관은 대부분 포천석이라는 회색 화강암을 씁니다. 이 건물엔 이집트 룩소르 지방 석재 색깔이라는 ‘룩소르 베이지 대리석’을 외벽에 써서 한층 밝아요. 색감 차이를 MZ들은 용케 알더군요. 베이지색 코트 입고 와서 ‘깔맞춤’하고 찍는 게 유행이라네요.” 송하엽(51) 중앙대 건축학과 교수가 박물관의 본관 격인 전시 1동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송 교수는 행림건축·경희대 천장환 교수와 함께 ‘크래프트 그라운드’라는 설계안으로 당선돼 이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축가다.
동서로는 창덕궁과 경복궁, 남북으로는 인사동과 북촌을 잇는 요지에 들어선 건축물이자 서울 시내 한복판에 오래간만에 들어온 박물관이다. 게다가 세종대왕이 지극히 아꼈다는 여덟째 아들 영응대군의 집터이자 1450년 세종이 승하한 곳, 순종의 혼례를 위해 건축한 안동별궁이 있던 자리. 건축가가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땅의 무게다. 송 교수는 “건물의 키워드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걷는 공간’이 됐다”고 했다.
공간의 중심축은 뒤뜰에 있는 400년 된 은행나무였다. “풍문여고 하면 은행나무지!” 나이 지긋한 팀원의 말이 귀에 쏙 박혔다. 학교가 이사를 하고 현장 방문을 갔을 때, 버려진 교실에서 발견한 교지 표지에도 은행잎이 그려져 있었다. 아름드리 고목 가지처럼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송 교수는 “초등학교 때 정문으로 가지 않고 담을 넘어가는 마음을 떠올리며 학교 안과 밖을 경계 짓던 담을 여기저기 허물었다”고 했다.
학교 담장이 가로막았던 동네의 모세혈관을 다시 이었다. 동서쪽을 개방해 이건희미술관이 들어서는 송현동 부지 쪽과 윤보선 가옥이 있는 윤보선길을 통하도록 했다. 박물관을 관람하지 않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골목처럼 드나들 수 있다. 한때는 운동장에서 통로로 바뀐 이곳에 안동별궁이 있었다.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면 궁터가 표시돼 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서로 다른 시기 지어진 학교 건물 다섯 동에 두 동을 신축해 국내에 전무후무한 ‘캠퍼스형 박물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자체가 작은 건축 박물관이기도 하다. 전시 1동은 경교장을 설계한 건축가 김세연, 전시 3동은 장충체육관을 설계한 김정수의 작품이다. 송 교수는 “땅에 깃든 역사와 건축사적인 의미를 잇기 위해 기존 건물 형태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파사드(입면)를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양 건축에서 파사드는 현판”이라며 “근대 건축에 들어와 외장과 구조가 분리되면서 건축 표면 자체가 도시의 인상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박사 과정(미 펜실베이니아대) 때 파사드의 표상을 전공했다.
실험이 집약된 공간은 감고당길의 아이콘이 된 원기둥 모양 어린이박물관이다. 기존 십자 형태의 건물에 둥글게 철제 프레임을 붙인 뒤 얼레에 연실을 감듯 원형 테라코타 판을 일일이 연결해 만들었다. 송 교수는 “현대 건축엔 가벼운 소재를 주로 쓰지만 터가 가진 역사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묵직한 재료인 테라코타를 썼다”며 “공예박물관이라는 성격에 맞게 건물 자체도 하나의 수공예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건축가는 시간과 공간을 날실과 씨실 삼아 만든 이 따끈따끈한 박물관이 “도시에 온기를 유발하는 공간 장치”가 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