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가 관광지 여행을 위한 베이스캠프이던 시절이 저물고 있다. 최근 숙소가 여행의 목적으로 격상됐다. 코로나 시대의 새 여행 패턴으로 등장한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영향이다. 스테이케이션이란 ‘stay(머물다)’와 ‘vacation(휴가)’을 합친 신조어. 즉 ‘머무는 여행’이다. 숙소 형태도 ‘스테이’라 불리는 감성 숙소로 진화 중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여행에서 ‘공간 소비’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색다른 숙소엔 돈을 아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숙소가 극적인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는 건축 형태가 됐다.” 최근 대학로 사무실에서 만난 포머티브 건축 고영성(42)·이성범(43) 공동대표가 말했다. 이들은 제주 스테이 ‘의귀소담’(2021), ‘삼달오름’(2020) 등으로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우수상, 건축가협회 아천건축상, 건축문화대상 우수상 등을 받으며 국내 ‘스테이 건축’을 이끄는 주역 중 하나. 지난 6~7년간 전국에 숙소 40~50개를 지었다. 이 중 제주에만 30여 개를 설계해 제주에 연고가 없는데 ‘제주 건축가’란 닉네임이 붙었다.

①서귀포 남원읍 귤밭에 있는 스테이 ‘의귀소담’. 중정 한가운데 말뚝 박은 듯 특이한 모양의 별채가 있다. ②지붕을 오름 형태로 만든 서귀포 성산읍 ‘삼달오름’. ③삼각형 건물 세 동을 엇갈리게 배치한 제주 구좌읍 평대리의‘더 스테어’. ④구운 대나무로 담을 만든 서귀포 안덕면 ‘벽락재’. /포머티브 건축

건축 전문가 임진영씨는 “차별화된 공간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젊은 층의 수요가 늘면서 포머티브 건축처럼 젊은 건축가들이 스테이 설계에서 특장을 발휘하고 있다”며 “스테이 플랫폼인 ‘스테이폴리오’ 같은 스타트업이 생기는 등 건축과 여행이 결합된 새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대학원(한양대 건축학과)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2016년 사무소를 열었다. 모토는 “재미있는 길,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자.” ‘포머티브(formative·조형적인)’라는 이름이 드러내듯 “프로젝트마다 적어도 한 가지 조형적 포인트를 줘 정체성을 쌓자”는 주의다. 형태주의 건축 스타일은 ‘비일상성’을 핵심으로 삼는 숙소 건축과 ‘케미(궁합)’가 맞았다. 삼각형 건물 세 동을 엇갈리게 배치하고(제주 구좌읍 ‘더 스테어’), 오름처럼 원형으로 만드는 식(서귀포 성산읍 ‘삼달오름’). 경쾌한 형태가 일상에 마모된 여행자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스테이 건축이 지켜야 할 덕목은 “주변에 해가 되지 않는 건축”이라고 했다. 너와, 구운 대나무 등 여러 자연 소재를 쓰는 이유다.

서귀포시 남원읍 귤밭에 있는 스테이 ‘의귀소담’ 중정 한가운데엔 말뚝 박은 듯 별채가 솟구쳐 있다. 원두막과 오두막을 합쳐 ‘온두막’이라고 이름 붙인 곳. 한두 명만 들어가는 명상 공간이다. 두 건축가는 “스테이 건축은 일견 종교 건축과 닮았다”며 “공간을 오롯이 느끼면서 심신을 치유하고, 잘만 만들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숙소 건축은 ‘잠자는 곳’이란 점에서 주택 형태에 가깝지만, 수익을 내야 한다는 점에선 상업 건축이다. 중간 지점에 있어 의외의 기능을 한다. 내 집 짓기가 언감생심인 이들에겐 며칠 동안 경험할 수 있는 건축 체험장, 견본 주택 기능도 한다. “집 같지 않은 집을 지어달라”며 숙박객이 집 설계를 의뢰한 적도 있다고 한다.

두 건축가는 담론에 갇힌 건축을 구출해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데에도 관심이 있다. ‘포머티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다. “장황한 글로 포장한 건축, 인스턴트 햄버거처럼 쉽게 소비되는 건축은 경멸한다. 생긴 건 특이하지만 맛은 충실한 ‘이색 케이크’ 같은 건축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