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풍향계에 변화가 생겼다. 지방의 개성 있는 브랜드가 전국구로 인기를 끌면서 일방적으로 남하하던 서울발 유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난달 중순 서울 강남 가로수길에선 ‘MASANAI(마사나이)’라는 이름을 내건 팝업 스토어(며칠 반짝 열리고 사라지는 가게)가 열렸다. ‘끄지라(꺼져라)’가 적힌 소화기, ‘마시라(마셔라)’를 새긴 맥주잔이 등장했다. ‘馬山(마산)’이라고 적힌 모자, 티셔츠도 있다. 경상도식 레트로 감성을 살린 제품이 사람들 발길을 붙잡았다.
마사나이는 경남 마산(행정구역상 창원시)에 사는 청년 셋이 만든 디자인 브랜드. ‘마산 아이’들이 뭉쳤다는 뜻도 되고 ‘마! 사나이’를 줄인 말이기도 하다. 창업자 셋 중 둘은 영국, 미국 뉴욕 유학파. “파리, 런던, 브루클린은 제품 이름에 쓰면서 마산은 왜 안 되나?” 오기가 발동해 해외 경험을 고향의 개성을 살리는 데 쓰기로 했다. “어렸을 땐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해외에서 보니 꼭 그게 정답이 아니란 걸 알았다.” 박승규(32) 대표는 “마산은 부산에 가려진 도시였는데 이젠 창원에 통합돼 구(마산합포구)로 전락했다. 이런 ‘언더독’ 느낌이 오히려 스토리텔링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러브콜 보낼 정도로 전국구 스타가 된 브랜드도 있다. 부산 편집숍 ‘사운드샵 발란사(BALANSA)’는 MZ세대가 열광하는 ‘스트리트 패션’에서 손꼽히는 이름이다. 영어 이름과 함께 한자 ‘釜山(부산)’을 박은 로고로 부산 DNA를 당당히 밝힌다. 수집광인 김지훈 대표가 2008년 문을 연 뒤 전국적으로 알려지자 2년 전 서울에 진출했다. 서교동에 있는 서울점엔 ‘特別市(특별시)’란 한자가 붙어 있다. 이마트, 오비맥주, 시몬스침대 등과 협업하고 한때 서브 컬처의 중심이었던 일본 하라주쿠에서 팝업 숍을 열었다.
대구의 편집숍 ‘이플릭(EPLC)’도 알음알음 소문난 곳이다. 한자 ‘大邱’를 넣은 모자, 영문 ‘DAEGU’를 새긴 티셔츠 등이 젊은 층에서 히트 쳤다. 깔끔한 디자인의 스니커즈 브랜드 ‘캐치볼’도 대구를 기반으로 한 곳이다. 수제화 디자이너 이경민(34)씨가 2018년 대구에서 시작한 업체다. 캐치볼 관계자는 “서울뿐만 아니라 프랑스 유명 편집숍 ‘BRUT’ 등 해외에서도 연락 와 협업했다”고 말했다.
로컬의 진격에 대해 디자이너 한정현(홍익대 교수)씨는 “MZ세대는 지방을 콤플렉스가 아닌 개성으로 여긴다”며 “높아진 자존감에 이 세대 특유의 디자인 감각이 합쳐져 당당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개성 있는 문화가 나왔다”고 했다. 마산이 고향인 문화 평론가 김도훈씨는 서울과는 다른 빛깔의 서브 컬처에 주목한다. “부산과 마산 등 경남 지역 항구도시는 일본과 가까워 오래전부터 독특한 서브 컬처가 있었다”며 “최근 스트리트 패션이 주목받으면서 이 지역에 뿌리내린 특유의 감성이 부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유명 신발 유튜버 ‘와디’는 ‘로컬의 힘’보다는 ‘브랜드의 힘’에 방점을 뒀다. 와디는 “디지털 시대를 사는 지금의 젊은 소비자들에겐 지방이냐 서울이냐가 아니라 제품 질이 좋으냐 안 좋으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며 “지방에서도 잘만 하면 전국에서 통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