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9월 열리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기간 서울 송현동 부지에 들어서는 파빌리온 조감도. 왼쪽 타원형으로 판 부분이 지하 전망대 ‘땅 소’, 오른쪽 비계 구조로 된 부분이 12m 지상 전망대 ‘하늘 소’다. 아래는 위에서 내려다본 송현동 부지. /조병수 제공·오종찬 기자

지하 4m에서 옛 한양의 지세(地勢)를 느끼고, 지상 12m에서 2022년 서울의 산세(山勢)를 느낀다.

서울 도심 한복판 110여 년간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금단의 땅’이 건축 무대가 된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48-9번지. ‘이건희 기증관’이 건립될 예정인 일명 ‘송현동 부지’에 내년 9월 파빌리온(가설 건축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을 주제로 내년 9~10월 열리는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동안 설치된다.

조병수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은 10일 “2017년 시작해 줄곧 DDP에서 열렸던 비엔날레 주 무대를 송현동으로 옮길 예정”이라며 “행사 기간에 전통과 현대가 중첩된 서울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가설 건축물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총감독에 임명된 조 총감독은 서울 종로 트윈트리타워, 부산 고려제강기념관 ‘키스와이어센터’, 박태준기념관, 천안 현대자동차 글로벌러닝센터 등을 설계한 국내 대표 건축가 중 하나다.

파빌리온은 2025년 이건희 기증관 건립 사업이 시작되기 전, 건축으로 이 땅의 역사를 환기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조병수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계획안에 따르면 파빌리온은 크게 두 개로 구성된다. 하나는 부지 동쪽 지상 12m 높이로 설계돼 인왕산·북악산·남산 등 주변 경관을 볼 수 있는 지상 전망대인 ‘하늘 소(所)’. 행사장이나 공사판에 쓰이는 ‘비계 구조’로 계단식으로 디자인했다. 자체가 구조물인 동시에 완성된 건축물이다. 쉽게 조립·해체할 수 있고 ‘쓰레기 없는 건축’을 지향해 100% 재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복궁 방향인 부지 서쪽에 최고 깊이 4m로 계단식으로 땅을 파 만든 지하 전망대 ‘땅 소(所)’. 타원형으로 판 다음 마사토를 깔고 철판으로 가장자리를 마감할 계획이다. 지면 눈높이에서 파노라마 뷰로 북악산 등 서울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조 총감독은 “송현동은 대한민국 역사 문화 중심부에 있는 땅으로, 서울의 원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며 “우리 선조가 배산임수(背山臨水), 좌청룡 우백호, 산·강· 바람의 흐름을 따라 친환경적으로 건립한 서울을 다양한 눈높이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지상과 지하 파빌리온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송현동은 한국 근현대사가 응축된 공간이나 110년 넘게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경복궁 바로 옆, 서울의 심장에 위치했지만 4m 담장과 철문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 볼 수도 없었다.

송현(松峴)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조선 초기엔 경복궁을 보호하는 소나무 숲이었고, 조선 후기엔 왕족과 명문 세도가들이 살았다. 일제 강점이 시작된 1910년 조선식산은행 사택이 들어서면서부터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게 됐다. 광복 후엔 미군 숙소,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쓰였다. 1997년 삼성생명이 사들인 뒤 2008년 대한항공으로 주인이 바뀌는 동안에도 폐허로 방치됐다.

지난해 서울시, 대한항공, LH 간 3자 매매 교환이 이뤄져 서울시로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개발 계획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달 29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올 하반기 송현동을 시민에게 임시 개방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조 총감독은 “청와대가 일반에 개방되고 대통령 집무실 ‘용산 시대’가 열리면서 서울의 남북을 잇는 축선에 있는 송현동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며 “파빌리온은 서울의 지난 100년 역사를 살펴보고 100년 후 모습을 그리는 마스터 플랜을 제시할 중요한 건축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