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들이 바닥에 자유롭게 앉지요? 앉다! 한국 미술관에서 저 행위가 이뤄지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몰라요. 남의 이목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주체가 돼 콘텐츠를 즐기겠다는 행동 표현인 거죠.”
독일 작가 히토 슈타이얼 개인전 ‘데이터의 바다’가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김용주(42) 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인 기획관이 관람객을 유심히 관찰하며 말했다. ‘앉다’라는 동사 하나로도 관람 문화 변화를 읽어내는 그는 한국 국공립 미술관 소속 전시 공간 디자이너 1호.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공채로 채용됐다.
지난 12년간 한국 미술관 풍경을 바꿔놓은 주역 중 하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2013년 개관)과 청주관(2018년 개관)이 문 열 때 디자인을 총괄했다. 이중섭 100주년 전 ‘백 년의 신화’(2016)·종이와 콘크리트 전(2017)·이건희 컬렉션 특별전(2021) 등 굵직한 전시가 그의 손을 거쳤다. 공을 인정받아 지난 5월 한국박물관협회 ‘제25회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에서 젊은 박물관인상을 탔다. 박물관장, 학예관에게 주는 이 상을 젊은 디자이너가 받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전시장의 보이지 않는 통역사. 작가·기획자의 의도를 관람객에게 시각 언어로 통역해 주는 사람이에요.” 여전히 일반인들에겐 낯선 ‘전시 디자이너’란 직업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좋은 전시 디자인은 장식을 잘했느냐는 차원이 아니라 작가의 삶을 얼마나 잘 이해했느냐에 달렸다”며 “작고 작가의 경우 작가와 관람객을 잇는 영매(靈媒)라는 생각으로 임한다”고도 했다.
전시장에서 그는 실험가다. 특히 벽의 마술사다. 벽을 ‘작품 거는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해방시켜 관람객에게 색다른 시선을 선사하는 도구로 쓴다. 틈을 내 그 사이로 작품을 보게 한다거나(이중섭·최만린 전) 아예 벽체를 띄워(유영국 전) 그 자체가 하나의 조형물이 되게 하는 식이다. 미술관의 발명가이기도 하다. 청주관에 보이는 수장고를 만들면서 ‘다기능 전시대’를 만들어 한국과 미국·일본에서 특허 출원했다.
원래 건축학도였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3년 가까이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 이후 대학원에서 공간 디자인하고 2007년 국립민속박물관 전시 디자이너가 됐다.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 만 서른이 되기 직전인 2009년 미국 보스턴 피바디 에식스 박물관에 들어갔다.
최근 미술관의 주 관람층으로 부상한 MZ 관람객은 그의 모험심을 충전한다. “MZ 세대가 전시장에 몰려드는 이유에는 미술 애호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향한 호기심도 있다”며 “미술관 밖 상업 공간에서 시각 자극을 충분히 즐겨온 이 세대에게 미술관이 어떤 특화된 이미지를 보여줄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가 바이블로 삼는 전시는 1955년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사진가 ‘에드워드 슈타이켄’의 ‘인간 가족 전’. 건축가 폴 루돌프가 디자이너로 참여해 따스한 문구와 사진 사이를 거니는 동선으로 전후 상처 입은 영혼들의 마음을 달래준 기념비적 전시였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신체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해졌어요. 직접 전시장에서 몸으로 경험하려고 하죠. 전시 디자이너로선 감사할 일. 우리를 붙잡아 뒀던 그 시간이 모든 걸 마이너스로 후퇴시키진 않았어요(웃음).” 다음 목표는 “관람 행위의 동사를 ‘앉다’에서 ‘머물다’로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