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우아한 백조를 닮은 의자(스완 체어·swan chair), 동그란 달걀 모양 의자(에그 체어·egg chair). 특이한 형태 때문에 똑같이 모양 본뜬 ‘짝퉁’이 워낙 많아 디자인 애호가가 아니라도 한 번쯤 봤을 가구들. 알고 보면 ‘20세기 디자인 아이콘’이다.
두 의자를 디자인한 사람은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대부’로 불리는 덴마크 건축가 아르네 야콥센(1902~1971). 20세기 디자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다. 그의 대표작 스완·에그 체어는 1960년 문 연 덴마크 코펜하겐의 ‘SAS 로얄 호텔(현 래디슨 컬렉션 로얄 호텔)’ 로비용으로 만든 가구였다. SAS 호텔은 ‘스칸디나비아 항공(SAS)’의 도심 공항 터미널 개념을 겸한 건물이었다. 야콥센은 호텔 건물 설계부터 화장실 표시판, 포크, 후추통까지 모든 것을 디자인했다. 요즘이야 이런 사례가 종종 있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세계 최초의 디자인 호텔이었다.
코펜하겐 중앙역 바로 옆에 있는 SAS 호텔은 유럽 도시의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을 깨뜨리는 20층짜리 성냥갑형 건물이다. 지금 보면 평범하지만 당시로선 국제주의 양식에 따라 첨단 공법이던 커튼월(골조만으로 하중을 지지하고 외벽은 유리로 마감하는 공법)을 적용한 최신식 건물이었다. 완공 땐 ‘유리로 만든 담뱃갑’이란 조롱도 나왔다. 날렵한 직선으로 무장한 건물의 차가움을 깬 것이 바로 곡선을 적용한 스완·에그 체어였다. 호텔 로비엔 지금도 당시 디자인한 빈티지 가구들이 그대로 있다. 특히 606호는 야콥센이 디자인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 건축·디자인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최근 SAS 로얄 호텔은 철거 운명에 처한 힐튼 호텔과 관련해 종종 언급된다. 야콥센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보존해 호텔 자체를 관광 상품으로 만든 SAS 호텔처럼 건축가 김종성이 설계한 힐튼 호텔 일부를 보존하자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