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색 벽돌로 빚은 U자 협곡, 흰색 사막 위 콘크리트 오아시스. 그리고 서해 바다를 마주한 보리밭의 벤치…. 갤러리나 박물관이 아니다. 모두 처음부터 카페 용도로 설계된 건물이다. 커피와 차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던 공간이 지금은 그 자체로 디자인 작품이다.
대전, 경기 여주, 전남 영광에 있는 이 카페 3곳은 모두 올해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은 작품이다. 국내 건축계 최고 권위상 중 하나인 이 상은 매년 7개의 최우수작을 선정하는데, 올해엔 카페 건물이 절반가량이다. 작년에는 출품작 중 약 5%만이 카페였고, 수상작은 없었다. 올해는 출품작 61개 중 약 15%가 카페 건물로, 1979년 상이 제정된 이래 가장 많다. 이 때문에 건축가들 사이에선 ‘카페 건축’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카페 건물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다. 서울의 젊은 예술인들이 서울 성수동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인근 물류 창고나 옛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거친 질감으로 공간을 꾸민 ‘공장형 카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교외 지역을 중심으로 ‘초대형 카페’ 유행이 이어졌다. 2020년 경기도 용인엔 야생화 정원을 포함한 1만평 규모의 카페가 생기더니, 올해 경기도 김포에는 카페 내부에 지하 주차장과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백화점 카페’가 들어서기도 했다.
이들이 공장, 창고, 백화점 등 기존 공간을 카페로 재해석한 건물들이라면, 최근 2~3년 동안 지어진 카페 건물은 ‘카페를 위한 건축’이라는 것이 특이점. 같은 공간이 층마다 반복되는 평범한 건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대화와 휴식이라는 카페의 기능적 특성을 고려해 건물 전체를 디자인한 것이다.
이번 수상작들의 공통점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대전 계룡산 자락에 위치한 ‘공간태리’(대표건축가 나은중, 네임리스건축사사무소) 부지엔 원래 시민들이 이용하던 산책로가 있었다. 이 길을 막지 않으려고 건물 두 동이 사람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협곡’ 형태의 건물이 탄생했다. 건물 옆 편으론 방문객들이 쉴 수 있는 마당을 둔 이곳은 주말이면 사진을 찍으러 오는 젊은 세대와 등산 후 휴식을 취하는 중·장년층이 어우러지는 공간이 됐다.
경기도 여주 영동고속도로 변에 위치한 ‘바하리야’(대표건축가 민우식, 민워크샵건축사사무소·마루건축사사무소)는 동명(同名)의 이집트 사막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카페. 하얀색 건물의 이 카페는 나무를 심지 않고, 흰색 모래와 돌로만 정원을 꾸며 마치 황량한 고속도로를 달리다 잠깐 쉬어갈 수 있는 ‘흰색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방문객들은 고속도로 위 동적인 풍경을 뒤로하고, 사막 정원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전남 영광 해안도로 인근에 자리한 ‘카페보리’(대표건축가 강우현, 아키후드건축사사무소)는 서해 바다를 마주 보고 있는 보리밭 한가운데 들어섰다. 바닷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단층 건물로 지은 이곳은 대부분의 좌석을 바다 방향으로 두어 마치 보리밭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세 곳 모두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한 디자인 덕에 전국 각지에서 방문객이 찾아온다. 이처럼 개성 있는 디자인의 카페가 흥행하자 카페 건축 수요도 늘어났다. ‘바하리야’를 설계한 민우식 건축가는 “최근 2~3년 전후로 카페 건물 건축을 상담하러 찾아온 건축주가 3~4배 늘었다”며 “주변 건축가들과 얘기하다 보면 하나씩은 카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이 체감될 정도”라고 했다. ‘공간태리’를 설계한 나은중 건축가는 “코로나19 시기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으며, 상업적인 공간인 카페가 시민들에게 휴식을 주는 공공장소의 성격을 갖게 됐다”며 “잠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며 카페 건축도 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