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한 원불교 원남교당의 2층 마당. 움푹 팬 골짜기처럼 만들어 도심 한복판인데 절간처럼 고요하다. /매스스터디스 제공

도통 한눈에 전체 형태를 가늠할 수가 없다. 보는 각도에 따라 동굴처럼 생긴 나선형 계단이 펼쳐졌다가 비스듬하게 잘린 원통이 돌출한 옥상이 보이고, 한옥도 등장한다. 이 비정형 건물은 서울 종로구 원남동 사거리 부근에 최근 들어선 원불교 원남교당. 1969년부터 이 자리에 있던 오래된 교당을 허물고 새로 지은 건물이다.

원남교당 전경. 가운데 하얀 건물이 종교관, 오른쪽이 훈련관, 앞의 한옥이 인혜원이다. / 원남교당 제공

새 교당은 한 독실한 신자의 기부에서 싹텄다. 주인공은 고(故)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 부인이자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장모인 김윤남 여사. 평생 이곳에 다니던 김 여사가 2013년 작고하며 유산(168억5000만원 상당)을 전액 원남교당에 기부하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2018년 설계자로 결정된 건축가는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탄 조민석(57·매스스터디스 대표) 소장. 서울 서초동 ‘부티크 모나코’, 여의도 ‘S트레뉴 타워’ 등을 설계한 한국 대표 건축가 중 하나다.

원남교당 외관. 계단 끝 반원 형태로 튀어나온 곳이 기도실, 뒤의 고층 건물이 서울대 병원이다. / 최창우

교당 터는 북쪽으로는 서울대병원과 등을 맞대고, 서쪽으로는 창경궁, 동쪽으로는 대학로가 이어지는 서울 한복판이다. 최근 이 건물에서 만난 조 소장은 “종교 건축인 동시에 구도심의 복잡한 맥락을 풀어내야 하는 어번(urban) 프로젝트였다”고 말했다.

시끌벅적한 외부를 시각적으로 차단한 원남교당 2층 마당. 오른쪽 한옥은 김봉렬 교수가 설계한 인혜원이다. /사진가 신경섭

건축가가 그린 그림은 ‘도심 속 산사(山寺)’였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처럼 서양에선 대개 종교 시설이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한국 전통 사찰은 자연에 있다. 절로 들어가는 여정 자체가 다른 세상을 만나는 과정이다. 이 둘을 절충한 개념을 염두에 뒀다”고 했다. 지금은 앞뒤로 고층 빌딩이 가로막고 있지만, 원래 이 터는 구릉지의 정상이었다. 땅의 특성을 활용해 건물 중심에 해당하는 2층 마당을 골짜기처럼 움푹 팬 형상으로 만들어 주변의 복잡한 풍경을 시각적으로 차단했다. 그 결과 대로인 율곡로에서 한 블록 안인데 절간처럼 고즈넉하다.

건물은 크게 네 덩이다. 법당과 위패 봉안실이 있는 중심 건물인 ‘종교관’(3층), 수도원 격인 ‘훈련관’(5층), 김봉렬 한예종 교수가 한옥으로 설계한 기념관인 ‘인혜원’, 이 셋과 조금 떨어져 초입에 있는 문화 시설인 ‘경원재’로 구성됐다.

곳곳에 곡면과 원이 적용된 원불교 원남교당. /사진가 신경섭

전체를 아우르는 조형적 키워드는 원불교의 상징인 원(圓). 조 소장은 “2차원 공간의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을 이은 도형이 원이다. 그 자체엔 두께와 물성이 없다. 원을 물질화해 공간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외관의 곡면부터 창문, 계단 손잡이까지 건물 곳곳에 원형을 적용했다.

폭·높이 8.4m, 두께 18mm거대한 철판에 지름 7.4m 의 원을 뚫어 만든 대각전 원상. /사진가 신경섭

백미는 폭·높이 8.4m, 두께 18mm 거대한 철판에 지름 7.4m 원을 뚫어 만든 대각전 원상(圓相)이다. “건축가 루이스 칸의 대표작인 미국의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도서관’과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에 적용된 커다란 원형 개구부를 떠올렸다”고 한다. 천창으로 하늘빛이 쏟아져 원상을 비추며 제임스 터렐의 작품처럼 시시각각 분위기가 바뀐다. 건축가는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느껴지는 정중동(靜中動)을 의도했다”며 “대조적으로 틈새 공간 곳곳에 둔 기도실은 발길을 멈추고 동중정(動中靜)을 경험하게 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원상 뒤로는 높이 14m 위패 봉안실이 설치됐다. 이곳에 이병철 삼성 창업주, 이건희 회장의 위패도 있다.

천창까지 14m 높이로 극적인 공간감을 주는 종교관 내부 위패 봉안실. 이곳에 이병철 삼성 창업주, 이건희 전 회장의 위패가 있다. /사진가 신경섭

시작과 끝이 없는 원의 특성은 동선에도 적용됐다. 건물 1층부터 옥상까지 내·외부로 끊김 없이 동선이 이어진다. 조 소장은 “내부의 종교 공간에선 외부와의 ‘의도된 단절’을, 외부 공간에선 생활 밀착형 종교를 지향하는 원불교 정신을 반영해 이웃과의 ‘적극적 연결’에 신경 썼다”고 했다. 연결을 구현하는 핵심은 건물이 면한 일곱 골목이었다. 4년 동안 축대를 허물고 막다른 길을 열었다. 도심의 막힌 혈을 뚫는 침술사 같은 역할이었다. “어떤 분이 다리 일곱 달린 문어 같은 건물이라더라. 절묘했다(웃음).”

틈새 공간에 천창을 뚫어 잠시 발길을 머물게 했다. '동중정의 공간'이다. /사진가 신경섭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로서 그간 종교 건축은 고사했다는 조 소장이 맡은 첫 종교 프로젝트다. 그의 아버지는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설계한 건축가 조행우씨. 부자(父子)가 서울 시내에 굵직한 종교 건축을 남기게 됐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종교가 건축적으로 도시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며 조 소장이 말했다. “종교 시설이 절대 숭상을 위한 공간이던 시대는 지나간 듯하다. 잠깐 다른 세상에 와서 나를 찾는 정신적 공간이면서 이웃에게 열린 차별화된 공간 제공. 이것이 21세기 도시에서 종교 건축의 역할 아닐까.”

건축가 조민석 /니나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