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새빛문화숲(옛 당인리 발전소) 서쪽 담장과 맞닿은 토정로 4길. 좁은 골목에 2~4층짜리 다가구주택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가운데 뾰족 솟은 건물이 눈에 띈다. 멀리서 보면 옥상에 피라미드가 얹힌 듯한 모양, 정면에서 보면 직각삼각형과 직사각형이 붙은 형태의 4층 건물(대지 104㎡, 연면적 152㎡)이다. 너비는 4m밖에 안 된다.
동네의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을 뚫고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건물의 이름은 ‘소슴당인’.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부문 우수상을 받은 작품으로, 건축가 임승모(41·SML 건축사사무소 대표) 소장이 설계한 근린생활시설이다.
“어린 아들한테 보여주니 ‘아빠, 솟아라 빌딩이야’ 하는 거예요. 거기에 착안해 이름을 ‘소슴당인(당인에 솟아있는 건물)’이라고 지었습니다. ‘소슴’에 ‘ㅅ’ ‘ㅁ’이 들어 있는데 각각 삼각형 지붕, 필로티 위의 사각형 매스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현장에서 만난 임 소장이 설명했다.
독특한 외관은 땅의 제약에서 왔다. 좁은 대지(너비 5.6m, 길이 17m)를 낮은 주택들이 삼면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남동향이라 도로에서 봤을 때 오른쪽 옆집과 뒷집의 일조권 사선 제한을 고려해야 했다. 건축법에 따르면, 일조권 보호를 위해 높이 9m 이하인 부분은 정북 쪽 인접 대지 경계선에서 1.5m 이상, 9m 초과 부분은 각 부분 높이의 2분의 1 이상을 띄워야 한다.
‘Form follows possibility(형태는 가능성을 따른다)’를 건축 모토로 삼는 임 소장은 “사선 제한을 제약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특수한 조건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사선 제한 면과 건물 입면을 평행하게 유지하고 건물 왼쪽의 수직 벽과 만나는 지점까지 연장했더니 꼭대기가 한 각이 17도인 예리한 직각삼각형 형태가 됐다. 여기에 4층이 있다.
계단참도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돌출시켜 외부로 개방된 발코니를 만들었다. “길을 연장한다는 의미에서 발코니를 ‘반(半) 외부 공간’으로 만들어 빽빽한 주변 풍경에 숨구멍을 틔워준 것”이라고 한다.
옥상으로 나가면 얼음과자 ‘더위사냥’ 형태를 참고했다는 돌출부가 보인다. 그 뒤로 펼쳐지는 당인리 발전소, 밤섬, 여의도 전망을 보며 건축가가 말했다. “당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인리 발전소는 골리앗, 이 건물은 다윗이라 생각했어요. 작지만 개성 있게 만들면 동네도 좋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임 소장은 “건물의 일등공신은 이런 형태를 만들게 한 땅”이라며 “땅에 감사한다”고 했다.
임 소장은 ‘협소 주택(바닥 면적이 아주 작은 주택)’과 대비해 소슴당인 같은 건물을 ‘협소 근생(근린생활시설)’이라 칭하며 “밀도 높은 도시에서 침술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라고 했다. “아파트 상가나 대형 상업 시설은 대규모 개발로 공간을 새로 만드는 것이지만, 작은 근생은 동네의 틈새에 들어가기 때문에 혈점 누르듯 공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디자인 실험엔 건축주와의 의기투합이 중요하다. 외국계 광고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하며 평소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는 건축주 윤명진(45)씨는 “재산 증식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합정·연남동 일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지역에 재미있는 건축물을 넣어 한국 로컬 건축의 잠재력을 실험하고 싶었다”고 했다. “각종 법적 규제와 민원에 부딪혀 힘들기도 했지만, 뾰족한 지붕을 만들기 위해 노출 콘크리트 시공하는 분들이 위태롭게 줄 하나에 의지한 채 장인 정신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기도 했어요. 많은 깨달음을 얻은 과정이었습니다.” 4m 폭, 17도 지붕 뒤엔 피, 땀, 눈물이 뒤엉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