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으로 복원된 이 건물은 이제 서울의 아이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

1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주한프랑스대사관 신축 개관식. 건물 기둥에 살포시 놓여있는 지붕은 한국의 처마처럼 유연하게 하늘로 치솟았다. 거대한 콘크리트 지붕 모서리 끝이 버선코처럼 살짝 들려 있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방패연을 날아가지 못하게 잡아당겨 놓은 듯 긴장감이 들면서도 가뿐해 보인다. 1962년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인 김중업(1922∼1988)의 설계로 완공된 모습 그대로였다. 지상 4층, 전체 면적 1603㎡ 규모.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이자 프랑스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1887∼1965)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였던 김중업은 당시 우리 전통 건축을 연상시키면서도, 서양의 노출 콘크리트 기법을 한국에 처음 적용해 건축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 2018년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완공됐다. 프랑스 대사관은 한국 현대 건축 1세대 고(故) 김중업 씨가 설계했다. 사진은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모습. 2023.4.15/뉴스1

이날 개관식에서 ‘김중업관’이란 이름으로 소개된 대사관 업무동과 그 옆에 콘크리트 지붕이 평평하게 얹혀있는 대사관저는 김중업이 설계한 작품이다. 김중업은 평평한 지붕 건물에선 스승인 르코르뷔지에를 오마주했고, 처마 지붕 건물엔 한국의 얼을 담았다.

특히 처마 지붕 건물은 그동안 몇 차례 개보수로 필로티 1층을 막아 사무실로 사용하는 등 훼손된 원형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프랑스 대사관 건물은 2018년부터 국내 대표적인 건축가인 조민석 매스스터디 대표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윤태훈 프랑스 건축사무소 사티 대표의 공동 설계로 김중업관을 복원하고 그 옆에 추가로 2개 건물을 증축해 대중에 공개됐다. 개관 행사에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도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열린 개관식에 앞서 대사관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

◇”피눈물 나는 작업이자 내 작품 세계의 길라잡이”

김중업이 살아 있다면, 원형을 되찾은 작품을 보고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1984년 발행된 자서전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에서 프랑스대사관 설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국의 얼이 담긴 것을 꾸미려고 애썼고, 프랑스다운 엘레강스를 나타내려고 한, 피눈물 나는 작업이었다. 나의 작품 세계에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고, 이로 하여 비로소 건축가 김중업의 첫발을 굳건히 내딛게 되었다.”

김중업의 설계안은 프랑스대사관 설계 공모에서 총 7명의 프랑스 출신 유명 건축가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최종안으로 채택됐다. 이번 신축 개관식은 시대를 앞선 김중업의 담대한 예술성과 현재 세계적인 명성을 잇는 한국·프랑스 건축가의 시대를 건너뛴 만남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지만, 과거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프랑스의 노력도 엿볼 수 있다. 주한프랑스대사관은 공식 성명을 통해 “김중업이 디자인한 너무나도 환상적인 지붕은 그 자체로 걸작”이라고 평했다.

◇프랑스의 문화유산 보존 전통

프랑스가 자국도 아닌, ‘외국인 건축가’ 작품마저 복원하며 문화 보존에 앞장서는 건 문화 강국으로서 ‘소프트 파워’를 중요시하는 전통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흔히 ‘문화유산’이라고 쓰는 말을 가장 처음 정착시킨 나라도 프랑스다. 건축가 임형남 소장은 “보통 대사관은 자국의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자국 건축가에게 맡기는 일이 많은데 한국 건축가의 설계를 이용해 한국과 프랑스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부터 예술가를 바라보는 프랑스의 소양을 느낄 수 있다”면서 “재개축을 위해 부수지 않고, 한국·프랑스 건축가를 함께 기용해 양측의 아름다움을 함께 보여주는 것도 의미 깊다”고 말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준공 당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