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공건축은 많은 사람들이 공간의 미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따라서 어떤 건축물보다도 건축적 완성도가 중요한 공간으로 꼽힌다.

오래된 취수탑을 호숫가 산책로의 조망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좁고 불편했던 산책로가 새단장하면서 내관지를 찾는 방문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가 조신형(비주얼로그)

대구 수성구는 최근 좋은 공공건축을 통해 도시 공간의 질을 향상시키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도심의 낡고 작은 건물을 재생해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내년부터는 국내외 유명 건축가·조경가가 참여하는 국제 비엔날레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달 11일 사전행사격인 프리비엔날레를 연다. 김대권 구청장과 신창훈 수성구 총괄건축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들이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총괄·공공건축가를 두고 있지만 지역의 시(市)가 아닌 구(區) 단위에서 국제 비엔날레까지 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최근 수성구에는 도시의 풍경을 바꾼 공공건축 프로젝트들이 조성되고 있다. 내관지 취수탑(설계 조진만건축사사무소)은 오랜 시간 폐쇄된 상태였던 취수탑을 호숫가 산책길의 조망 장소로 재탄생시킨 작업이다.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였던 좁은 보행로를 새 산책길로 단장하는 작업의 일부로 조성됐다. 내관지라는 자연 환경의 이점을 잘 살린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다.

오래된 다가구주택을 리모델링한 들안 예술마을 창작소. 주차장으로 쓰이던 1층 필로티 부분을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사진가 조신형(비주얼로그)

들안마을에서는 평범한 다가구주택을 앵커 시설(지역 문화 거점시설)로 재생했다. 들안 예술마을 창작소(설계 윤근주·Mladen Jadric·이주화)는 1층에 사용된 강렬한 오렌지색이 눈길을 끈다. 다가구주택의 1층은 필로티(기둥 위에 건물을 올린 구조)를 이용한 주차장으로 활용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은 근처의 공원과 연계해 지역 주민들이 도서실, 전기차 충전소 등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공공시설은 주차장 산정 방식이 주거시설과 달라 여유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디자인이다. 건축가 김준성도 평범한 빌라를 북카페, 체험형 교육 공간, 쿠킹 스튜디오 등을 갖춘 앵커시설로 리모델링했다.

옛 범어3동 행정복지센터 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정호승 문학관. 시집과 같은 비례의 창문을 반복적으로 배치했다. /사진가 조신형(비주얼로그)

옛 범어3동 행정복지센터 건물은 정호승문학관(설계 SPLK건축사사무소)으로 재탄생했다. 같은 모양의 창과 벽의 반복을 통해 시의 운율을 형상화하고, 시인의 유년 시절 추억의 일부인 범어천 바닥의 흙을 연상시키는 붉은색으로 마감했다.

내년에는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도 개최할 예정이다. 건축을 통해 도시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프로젝트.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현된 장소에서 실체를 경험하는 현장 전시’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건축과 조경의 협업을 통해 조성한 창작의 영역에서 인공과 야생, 자연과 사물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유형의 장소들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페르난도 메니스(스페인), 이시가미 준야(일본), 매스스터디스(한국) 등 국내외 유명 건축·조경가들이 참여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권종욱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가 조직위원장을 맡고, 최춘웅 서울대 건축학부 교수와 김영민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아 건축과 조경,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아우르는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사전행사격인 프리비엔날레는 이달 11일 두산동 꿈꾸는 예술터(전시)와 호텔 수성(포럼)에서 열린다. 2024 수성국제비엔날레 주제 및 참여작가 소개와 전문가 초청 토론 등이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