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이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방문해 기하추상 화가 이승조(1941~1990) 회고전 전시작 앞에 섰다. 이 전시는 현재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전환된 상태다. /RM 인스타그램

생일날, 그가 향한 곳은 미술 전시장이었다. 방탄소년단 리더 RM(김남준·26)은 자신의 생일이던 지난 12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미디어아트 전시를 관람했다. ‘삼성동 전광판 파도’로 유명한 디자인회사 디스트릭트 측의 영상 기술이 상업 화랑에 구현된 첫 전시로, 캄캄한 실내의 6m 벽면에서 바닥까지 투사된 시퍼런 빛의 파도가 관람객을 덮치는 몰입형 전시다. RM은 파도에 물든 자신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곧장 BTS 공식 트위터에 게재됐다. 팬들은 잇따라 전시 정보를 공유하며 “남준이 다녀온 전시 보고 왔다”는 글을 올렸다.

◇RM 따라 미술 전시 투어

최근 미국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며 전 세계 대중음악을 평정한 BTS가 미술계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 중심에 미술 애호가로 소문난 RM이 있다. 평소 “미술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고 밝혀온 RM은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도 올해 거의 매달 전시장을 찾았고, 팬들은 트위터 해시태그 등을 통해 RM의 행선지를 공유하는 이른바 ‘RM 투어’를 통해 미술 경험을 확대하고 있다. 화랑미술제(서울)부터 김종학 회고전(부산)까지 전국을 누빈 RM은 지난 5월 부산시립미술관 방명록에 “쉽지 않은 시기, 같이 잘 이겨나갔으면 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한 전시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침체된 시장 상황에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RM의 소셜미디어는 미술계에서도 주목해야 할 공간이 됐다. 팬덤이 워낙 거대해 “RM이 다녀갔다”는 입소문 하나가 알짜 광고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RM이 방문했던 서울 금호미술관 전시의 김윤옥 큐레이터는 “지금 미술계에는 ‘RM이 본 전시’와 ‘그렇지 않은 전시’로 나뉠 정도”라며 “RM이라는 통로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작가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RM이 선물한 선한 영향력

미술은 책 안에도 있다. RM은 생일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측에 “미술책 읽는 문화 확산에 일조하고 싶다”며 1억원 기부 의사를 밝혀왔다. “미술 관람 기회가 적은 산간벽지의 청소년들도 도록 등을 통해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연락해온 것이다. 14일 미술관 측에 따르면, 1억원은 소속사가 아닌 RM 본인 은행 계좌를 통해 입금됐다. 해당 기부금은 김환기·이중섭·유영국·박래현을 포함한 한국 화가의 도록 7종 등 4000권 제작에 사용되고, 책은 다음 달 전국 400곳의 공공도서관 및 도서 산간지역 학교도서관 등에 무상 배포된다.

가나아트센터 시오타 치하루 개인전, 국제갤러리 a'strict 개인전, 금호미술관 김보희 개인전에 방문한 RM(왼쪽부터 시계방향). /트위터·인스타그램

◇RM의 미술 취향은?

도상봉·변월룡·손상기 등 작고 화가부터 달항아리 도예가 권대섭에 이르기까지 RM은 장르 불문 꾸준히 한국 미술에 큰 애착을 보여왔다. 실제로 상당한 안목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관은 “덕수궁관에 찾아온 RM과 우연히 만나 대화한 적이 있는데 예상보다 박식한 데다 이쾌대의 그림 ‘군상IV’를 서양 신화와 연결해 해석할 정도로 깊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환기·이우환·유영국 등 단조로우면서도 묵상(默想)의 기운이 감도는 작품에 호감을 드러내왔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근현대 소장품 첫 상설전과 한국 기하추상 거장 이승조 전시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단색화가 윤형근 그림의 경우 지난해 이탈리아 포르투니미술관 전시에 이어 지난 1월 열린 미국 데이비드즈워너갤러리 전시와 4월 서울 PKM갤러리 전시까지 연달아 관람했다. 최웅철 한국화랑협회장은 “RM은 지난해 방문에 이어 올해도 한국국제아트페어 출품작을 구매했다”며 “국내 미술 시장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