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행위 예술가 이건용 작가가 197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협회전’에 출품한 ‘신체항–71’. 나무 한 그루를 뿌리째 뽑아 전시장에 옮겨놓은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이 현대 미술의 복판,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으로 진출한다. 한국 초창기 전위(前衛) 미술이 해외 최고 수준의 전시 기관에서 대규모로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구겐하임미술관과 협약을 맺고, 2022년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특별 기획전을 주최하는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전시는 상·하반기로 나뉘어 양국에서 순차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양측이 수년 전부터 준비한 프로젝트”라며 “'실험 미술'을 주제로 서울서 먼저 선보인 뒤 뉴욕으로 넘어가는 일정으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구겐하임 측에서는 아시아미술 담당 안휘경 큐레이터가 전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대 거장 위주의 회화 전시가 아니라, 본격적인 ‘탈(脫)캔버스’ 전개를 이끈 1960~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이 국제적 조명을 받게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1세대 행위 예술가 이건용(78) 작가는 “아방가르드는 관(官) 주도 기성 화단에서 새 정신의 예술 확산 조짐을 보인 사건”이라며 “한국에서는 열심히 했는데 해외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한 당대 우리 미술 실험이 널리 알려질 기회”라고 말했다. 초대 한국아방가르드협회장을 지낸 하종현 화가 등이 전시 참여 작가로 거론되고 있다.

전위 예술가 강국진·정강자·정찬승이 1968년 진행한 퍼포먼스 ‘한강변의 타살’ 한 장면.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아방가르드는 전후(戰後)의 혼란과 궁핍을 화폭에 담았던 비정형 회화 앵포르멜(Informel)의 점진적 쇠퇴 이후 태동한 미학적 반란이었다. 기성 장르를 벗어난 행위 예술 등의 파격이 피어난 것이다. 집단 선언 및 그룹 운동 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은 현대미술가협회(1957)를 거쳐 청년작가연립전(1967) 등으로 이어졌다. 1968년 국전(國展)의 부패를 비판하며 강국진·정강자·정찬승이 제2 한강교 아래서 ‘문화고발장’이라는 문장을 불태우는 현실 고발성 퍼포먼스 ‘한강변의 타살’ 등이 등장했다. 이듬해 김구림·서승원·이승택 등이 참여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이건용 등이 주축이 된 ‘ST’(공간과 시간) 등이 창립됐다. 일련의 움직임은 외국에서 유입된 개념 미술의 영향과 더불어 국내 입체·설치미술 확장에 파급력을 발휘했다.

2012년 전위 예술가 김구림(84)이 영국 테이트모던 기획전에 초대되고, 지난달 이건용 작가가 미국 미술 매체 아트시(Artsy) 선정 ‘지금 주목해야 할 예술가 35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한국 아방가르드와 현대성을 일별하는 책 ’1953년 이후의 한국미술'이 최근 영국 대표 미술 출판사 파이돈에서 출간되는 등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국제 무대 진출 빈도가 점차 잦아지고 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구타이(具體)를 위시한 일본 전위 미술의 소개 양상에 비하면 한국은 늦은 감이 있다”며 “우리만의 현실 비판적 시선과 갈등을 포괄하는 독자성이 제대로 소개돼 한국 전위 미술이 서구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는 점을 짚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구타이 그룹 특별전은 2013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밖에도 베이징 중국국가미술관, 독일의 저명 미디어아트센터 ZKM, 미국 서부 최대 규모 미술관 LA카운티미술관 등과도 공동 전시 주최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