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00년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

걸작마다 한글이 숨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 작가 백남준(1932~2006)의 대작 ‘W3’는 64대의 TV를 벽면에 엇갈리게 배치한 초대형작이다. 64대의 기하학적 TV 배열은 인터넷(www)을 위시한 소통 확산을 함의하는 동시에, 주역(周易)의 64괘 원리를 숨기고 있다. 인간·자연의 존재 양상과 변화를 상징하는 한글의 제자(製字) 원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현란한 영상으로 약동하는 TV의 연쇄는 일종의 음파처럼 형상화되는데, 소리 질서를 시각화한 한글의 핵심 지점과 연결되는 식이다.

①박이소 ‘인간적/비인간적’(1987).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박수근·백남준·이응노·남관·김종영·박이소·황창배·서희환….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작고 거장 9인의 작품 속에서 살아 숨쉬는 한글의 조형 원리와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11월 12일부터 내년 2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관과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②황창배 ‘무제’(1990). /ⓒ황창배미술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 화가 김환기(1913~1974)의 문자 실험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67년 완성한 그림 ‘무제’는 그 중요한 증거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당시 신문지 위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일련의 ‘상징 도형’ 연작이다. 기이한 상형 문자와 훈민정음 자모(字母) 등의 실험은 이후 점화(點畵)로 발전한다. 출품작 ‘봄의 소리 4-I-1966’의 경우, 세상을 깨우는 봄의 여러 소리를 점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회화적 표음(表音)인 셈이다.

③이응노 '문자 추상'(1977). /ⓒ가나문화재단
④박수근 'ㄱㄴㄷㄹ'(1950년대) ⑤김환기 '무제'(1967). /개인소장, ⓒ환기재단·환기미술관

화가 남관(1911~1990)·이응노(1904~1989)로 대표되는 ‘문자 추상’도 빠질 수 없다. 1960년대 이후 서체를 추상 회화 요소로 활용해, 콜라주 등의 기법으로 미적 영역을 확장했다. 문자 추상이 문자 구축 과정과 유사한 건축적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의 돌조각 역시 한글의 조형성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78-28’ 등에서 보이듯 여러 기하 문양이 ㄱ·ㄴ 등의 글자 형상으로 맞물려 있다. 평소 추사 김정희에게 큰 영향을 입었음을 밝혀온 것처럼, 특유의 조형성이 문자의 자모가 네모틀 안에서 합쳐지는 듯한 시각 효과를 자아낸다.

⑥김종영 '작품 78-28'(1978). /ⓒ김종영미술관

뜻밖의 장소에서 한글은 속속 발견된다. 국민 화가 박수근(1914~1965)이 전매특허 두터운 흙빛 배경에 그린 훈민정음 자모 그림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한국화 테러리스트 황창배(1947~2001)의 회화적 파격 속에도 한글은 반짝인다. 1990년작 ‘무제’ 배경을 장식하는 자작시의 해독도 흥미거리다. 한국 개념미술의 새 장을 열었던 박이소(1957~2004)는 현대사(史)의 편린을 한글로 작품에 녹였다. 민주화 운동 당시 고(故) 김근태 의원의 고문 일기를 발췌한 회화 ‘인간적/비인간적’은 강렬한 흑색의 낯빛을 꺼내보인다.

⑦남관 ‘아상블라주’(1987) ⑧서희환 ‘찬란한 예술의 시대를’(1988).

가장 솔직한 한글의 형태, 서예도 준비됐다. 훈민정음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서예가 서희환(1934~1995)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중성적 자형(字形)에 갑골문 등의 생동감을 접목해 새로운 한글 서풍을 창출했다. 이번 출품작은 예술의전당 개관 당시 구상 시인의 헌시를 한글로 옮긴 것으로, 그의 작품 중 최대 규모다.

⑨백남준 ‘W3’(1994).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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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간 : 11월 12일~2021년 2월 28일

▲장 소 :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관,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시 간 :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월요일 휴무

▲요 금 : 성인 1만2000원, 초·중·고교생 8000원, 유치원생 5000원

▲인스타그램: art.hangeul

▲문 의 : (02)580-1300, (02)724-6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