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커다란 헤드셋(headset)을 쓰자 연못 한복판 연꽃 위에 있는 듯한 아찔한 느낌이 든다. 머리를 들면 고래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곁에선 홍학(紅鶴)이 사뿐사뿐 걸어다닌다. 박용제 작가의 가상 현실(VR) 작품인 ‘몽중화(夢中花)’.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컴퓨터 기술과 인간의 상상력으로 구현한 초현실적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16분짜리 단편 VR 작품이다. 마지막에는 건너편 연꽃 위의 부처님과 마주보는 듯한 경험도 할 수 있다.
다음 달 13일까지 인천국제공항 제1교통센터에서 열리는 가상 현실 전시회 ‘현실을 넘어서(Beyond Reality)’의 출품작. 공항철도를 타고 센터에 도착하면 가짜 여권과 탑승권을 나눠준다. 모의 출국 심사대와 라운지는 물론, 항공기 선실까지 꾸며 놓았다. VR 작품을 한 편 볼 때마다 출국 도장처럼 찍어준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하루 공항 이용객이 20만명에서 7000명으로 줄어들자 부천국제영화제와 주한프랑스문화관, 인천국제공항이 함께 VR 체험 전시회를 마련했다. 코로나로 막힌 해외 대신 가상 현실로 여행을 떠나는 셈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한국·일본·대만과 프랑스 등에서 출품한 VR 작품 15편을 체험할 수 있다.
VR은 말 그대로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컴퓨터로 구현한 가상 공간에 들어가서 현실과 비슷한 상황을 느끼고 체험하는 기술이다. 정보통신 발달의 산물이지만 지금은 교육과 예술 등 전 분야로 급속하게 확산하고 있다. 재불(在佛) 권하윤의 ‘피치 가든(Peach Garden·복숭아 정원)’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서 착안한 15분 길이의 작품이다. 언뜻 보면 커다란 헤드셋을 쓴 관람객이 가로·세로 각각 10m의 텅 빈 공간에서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직접 헤드셋을 써보면 수중(水中)과 정원, 밀림과 사막 같은 별천지가 하나의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펼쳐진다. 임병한·저스틴 리가 합작한 ‘드리밍 마에스트로(Dreaming Maestro)’는 가상의 지휘자가 되어 손동작을 하면 그 움직임에 따라서 다양한 음악이 흐르는 실시간 양방향 프로그램이다. 김종민 부천국제영화제 큐레이터는 “현실의 여행길이 막혀버린 지금, 오히려 공항이야말로 ‘가상 현실’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