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땅의 내력을 담는다. 도공은 찻사발 하나를 빚어 겉면에 검은 글씨로 ‘朝鮮八道(조선팔도)’라 적었다. 17세기,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로 추정된다. 고향의 지명을 떠올리며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강원도를 나란히 한문으로 남겼다. 조선팔도 중 여섯 곳만 기록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400년이 지나도 흙의 기억이 단절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찻사발, 정호다완(井戶茶碗)의 고졸한 아름다움을 돌아보는 전시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12월 27일까지 열린다. ‘팔도다완’<사진>을 포함한 조선 정호다완 3점과 도예가 김종훈(48)씨가 제작한 정호다완 75점이 한 공간에 놓여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차 한잔의 자기 소묘를 권하는 전시다. 흙색의 찻사발을 주최 측은 주역의 곤괘에 나오는 ‘황중통리’(黃中通理)로 해석했다. 군자는 황색으로 안을 채우고 이치에 통달해 바른 자리에 선다는 것이다. 학고재 측은 “의외로 젊은 세대가 많이 온다”고 했다.
정호다완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 국보로 사랑받는 도자기지만, 한국에선 구할 수도 없다. 그런 정호다완의 이해와 재현에 김씨는 20년 넘게 매달리고 있다. “일본서 전시 소식이 들릴 때마다 60여회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여주 작업실 근처 산에서 직접 캐 7~8년 묵힌 흙으로 빚는다. “흙이 나이 먹어가며 더 밀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그걸 빚고 깎고 유약을 발라 굽는다. 찻사발 굽 부위에 매화피(梅花皮)가 피어있다. 유약이 끓어 매화나무 등걸처럼 도자 표면에 결정을 이룬다. 그것은 노인의 입술주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찻사발은 그러나 차를 마시기 위한 것이다. 입술과 시간이 닿아 비로소 흙색이 짙어진다. 김씨는 “찻사발은 차를 마시는 사람이 담길 때 완성된다”고 말했다. 빙렬(氷裂)은 금이 간 것이지만, 결함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