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왈도 과야사민 ‘자화상’(1950). /사비나미술관

그림은 메시지를 지니고, 때로 정치력까지 발휘한다. 에콰도르 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1919~1999)은 민중의 분노와 핍박을 고발하는 격동의 그림으로 국민 화가 반열에 올랐다. 그의 첫 국내 개인전이 19일부터 내년 1월 22일까지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다. ‘남미의 피카소’로 불리지만,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다.

이 전시는 지난해 5월 이낙연 의원이 당시 국무총리 신분으로 에콰도르 방문 도중 들렀던 과야사민미술관에서 크게 감명받아 국내 초청을 추진해 성사됐다. 지난해는 과야사민 탄생 100주년이었다. 이 전 총리는 “라틴아메리카 국민의 고통과 분노가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된 좋은 공부의 시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차원의 연구·조사가 진행돼 지원 예산 약 4억5800만원이 책정됐고, 지난 1월 사립미술관 공모가 진행됐다.

캔버스 5개로 이뤄진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대표작 ‘펜타곤에서의 회의’. 그림 하나당 179x179㎝ 크기의 대작이다. 독일군 장교, 독재자, 스파이 등의 모습을 통해 지배 계급의 탐욕과 비열함을 드러낸다. /사비나미술관

미술계 일각에서는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는 좌파 민중 계열 화가를 소개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에콰도르는 피식민과 독립, 전쟁의 격동을 거쳤다는 점에서 우리 근현대사와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 한 미술평론가는 “국내 큐레이터의 주도적인 연구에 앞서 정치인 개인의 감흥이 전시 개최를 좌우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방한한 과야사민의 딸 베레니세 과야사민(69) 과야사민 재단 이사는 “아버지가 쿠바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열혈 지지자였기에 정치적 시선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예술이라는 넓은 차원에서 바라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에콰도르는 지난 대선에서 좌파 정당이 집권했으나, 최근 남미 우파 정부들이 모인 ‘프로수르’ 창설에 참여하는 등 우향우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60년대 마오쩌둥의 초청으로 중국에 방문하는 등 중국서만 전시가 네 차례 열렸지만, 한국에 본격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56년 바르셀로나 비엔날레 그랑프리, 이듬해 상파울로 비엔날레 1등상을 받으며 실력을 확인한 작가의 그림은 강렬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지배 계급의 폭력성을 드러낸 대작 ‘펜타곤에서의 회의’(1970) 연작 등 출품작 89점은 프란시스코 고야를 연상케 하는 초기작부터 입체파 스타일의 후기작까지 화풍의 변천을 아우른다. 남미 뿐 아니라, 스페인 전역을 여행하며 그곳 민중이 겪고 있던 불행을 ‘눈물 흘리는 여인들’(1963~1965) 등의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애도와 분노의 화면을 지나 노년에 이르러 작가는 ‘어머니’를 그리며 온유의 인류애를 제시한다.

에콰도르는 코로나 확진자 20만 명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18일 개막식에 맞춰 현지 문화부 장관까지 날아올 정도로 이번 전시에 열의를 드러냈다. 미술관 측은 “당초 이낙연 의원도 개막식에 참석하기로 했으나 17일 불참 소식을 통보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