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본다. 외면하고 있던 ‘나’를 바라보며 자문한다. 그러자 ‘나’ 역시 몸을 돌려 나를 응시하기 시작한다. 동양화가 김호득(70)씨는 큰 붓에 먹을 묻혀 왼손에 쥐고, 광목 위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획을 쳐 ‘나’라고 썼다. 몸을 반대로 돌린 형태의 ‘나’, 이름하여 ‘돌아선 나’가 탄생했다. “나는 왼손잡이다. 그래서 서예는 배우지 못했다. 오른손잡이 흉내내는 건 내키지 않았다.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로 했다. 획의 방향이 모두 똑같을 필요 있는가?”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에 그가 출품한 ‘돌아선 나’는 글자이며 추상화다. 가장 핵심적인 획 몇 개로 수묵화를 그리는 그는 “글자를 왼손으로 거꾸로 써놓으니 그림 같더라”고 말했다. 2007년 나온 이 작품은 ‘한글 수묵’ 연작의 시작점이다. “한글은 자체에 시간과 공간과 소리와 의미를 담고 있다. ‘가’를 발음하면 속도가 떠오른다. ‘나’를 말하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한글 ‘가’ ‘나’를 뒤집어 ‘돌아서 가’ ‘돌아선 나’라는 작품을 그렸다. “‘…가'는 황급히 어디론가 떠나듯 선을 날렵히 하고, ‘…나’는 스스로를 곱씹듯 두세 차례 가필하며 굵게 썼다.” ‘나’ 밑에 대지처럼 긴 일획을 그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황야에 뿌리 내린 선인장처럼 보인다. “‘…가'는 금세 팔렸는데 ‘…나’는 안 팔렸다. ‘…가’는 가고, ‘…나’는 남았다.” 전시는 내년 2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관과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나’의 발견은 대체로 휴지기에 온다. “2005년 뉴욕으로 떠났다. 교수(영남대) 안식년이기도 했고, 변화도 필요했다. 현대미술의 복판으로 무작정 향했다. 붓은 잠시 놓고 1년 내내 전시만 둘러봤다. 별의별 시도를 다 하더라. 나 하고 싶은 것, 잘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고 절절히 느꼈다. 왼손잡이 콤플렉스가 싹 없어졌다. 애로 사항이라 여겼던 걸 만천하에 드러내자.” 이후 ‘글자’ 연작이 시작됐다. ‘ㄱ’과 ‘ㄴ’을 왼손으로 뒤집어 길게 내려 그은 두 점의 ‘폭포 이미지’(2010)는 그 정수(精髓)라 할 수 있다. “폭포 줄기처럼 일필로 처리했다. ‘ㄱ’은 물이 시작되는 곳에서 꺾이고, ㄴ'은 물이 바닥에 닿는 곳에서 꺾인다. 다 제거하고 선 맛만 살렸다.” 그 일획에서 우렁찬 물소리가 들려온다. “한글은 자모 하나하나가 극도로 단순한 추상이다. 고수일수록 힘 빼고 동작은 단순하다.”
서울대 미대 3학년 무렵까지 서양화를 그렸다. 돈이 없어 동료들이 버린 캔버스에서 뜯어낸 광목에 그리곤 했다. 그러다 동양화로 붓을 틀었다. “외국 유학 갈 형편도 안 됐고, 서양화는 이미 갈 데까지 간 느낌이었다. 동양화는 스러지고 있으니 오히려 시도할 거리가 많을 것 같았다.” 지필묵에 청춘을 바쳤다. 간경화·폐렴·식도암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번 출품작 중에는 “워낙 각별해 그간 밖에 내보내지 않았다”는 ‘부서지는 나’(2009)도 있다. “아사천 한필을 사뒀는데 마지막 자투리에 쓴 글씨다. 붓을 아주 세게 그으니 천이 밀려 구겨지면서 획이 뚝뚝 끊어지는 효과가 났다. 쓰고 보니 ‘나’가 마치 부서지는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 ‘다’ ‘라’도 쓸 생각이지만, 나는 ‘나’가 제일 좋다.” 부서지되 ‘나'는 끝내 형상을 붙들고 있다.
4년 전 곤지암 근처로 터를 옮겨 붓을 잡고 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갇혀 있는 기분이 든다. 국내며 해외 전시가 싹 취소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라 치련다. 다시 칼도 갈고.” 나이 일흔, 어깨까지 내려오던 장발을 그는 15년 만에 짧게 잘랐다. “핵심만 남기고 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