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의 순간’에 출품한 국악인 원일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작품‘ㅂㄷㅊㅅ’. 태곳적 인간이 갈망한 하늘에서 반짝이는 북두칠성의 형태와 훈민정음의 조형적 유사성을 교차시키며 소리를 시각화했다. /예술의전당

보이는 ‘문자’는 보이지 않는 ‘소리’(말)에서 태어났다. 소리가 전생이다. 영혼과 육신이 만나듯 말과 글도 합쳐져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우주의 탄생 과정이나 기억의 장치인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혼돈에서 질서에 이르는 과정은 어둠에서 빛으로 진행하는 시간과 공간의 통로가 필요하고, 어둠에서 태어난 빛은 모든 생명체의 씨가 되기까지 시간의 진화가 절대적이다. 100년 동안 문자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며, 비평해온 조선일보의 ‘기억’(역사)은 문자의 첫 소리인 ‘ㄱ’이라는 생물을 통해 다양한 가치와 시스템을 관통해온 것이다.

‘ㄱ’은 한글의 첫 자음이다. ‘ㄱ’이라는 기호가 한글의 첫 문자로 형상을 입기까지는 천지개벽과 같은 시공간의 사유가 존재한다. ‘기역’이라는 소리가 글자 ‘ㄱ’으로 환생하는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인문·사회학적인 외연을 다채롭게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ㄱ의 순간’은 시공간의 뜨거운 사유를 다양하게 경험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란 과거를 소환해 현재와 미래를 중개하고 부활케 하는 중보적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 기억은 시간의 영매(靈媒) 역할을 하며, 논리와 감성, 사회정치적 판단을 통해 비평과 반성의 기능을 겸하게 된다.

이용우 중국 상하이대 석좌교수

물리학에서 소리란 기체와 액체, 전자와 양자, 물과 불, 또는 음과 양 등의 전송 매체를 통해 음향파로 생성되는 진동으로 설명한다. 보이지 않는 소리가 상호 운동을 통해 보이는 ㄱ, 즉 첫 ‘문자’로 존재론적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ㄱ의 순간’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무대는 일회성 전시회가 아니라 21세기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인문학적 반성, 정보 사회의 시민들이 옹립한 인터넷 왕국에 대한 비평, 인간을 위한 기술과 인본주의, 그에 대한 사회학적 관계항을 토론하는 플랫폼일 것이다.

따라서 ‘ㄱ의 순간’은 문자를 매개로 100년간 독자와 소통해온 조선일보가 자기 정체성을 재질문하기 위해 독자는 물론 익명의 대중과 격의 없이 만나는 무대가 돼야 한다. 100년간 광의의 독자 및 대중에게 역사인 ‘기억’과 문명의 씨인 ‘ㄱ’을 안내해 온 자기 진술서를 검증해보는 무대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