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안드로 에를리치 인스타그램·한국관광공사 블로그

“한국에서 이런 일을 목격하다니 정말 화가 난다.”

아르헨티나 출신 세계적 설치미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48)는 몇 달 전 분통을 터뜨렸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작품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시설물이 한국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거울 등으로 착시를 야기하는 설치미술로 이름 높은 작가다. 이를테면 2004년 처음 발표해 전 세계에서 전시 중인 ‘Bâtiment’(건물·위 사진)이 대표적이다. 여느 건물 외벽 형태의 세트장을 땅바닥에 눕혀, 그 위에 관람객이 올라가 눕도록 유도한 뒤, 그 앞에 대형 거울을 비스듬히 세워둠으로써 거울에 비친 관람객들이 마치 직립한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재미를 주는 것이다.

충남 아산시 산하 장영실과학관 전시작 ‘나는 스파이더맨’<아래 사진>을 본 작가는 당혹스러웠다. 현재는 사라졌으나 당초 홈페이지 설명문은 ‘45도로 기울어진 거울을 설치해 바닥에서의 활동이 수직벽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경험’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작가의 콘셉트와 일치한다. 에를리치 측의 항의를 받은 아산시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과학 원리를 이용한 아이디어는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검토 의견도 있었으나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으니 곧 다른 작품으로 교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시장은 폐쇄 중이다. 에를리치의 또 다른 착시 효과 설치작 ‘수영장’ 역시 제주도의 한 카페가 거의 유사한 형태로 제작해 포토존으로 활용하다 항의를 받고 지난해 10월쯤 재시공했다. 작가는 본지를 통해 “이 같은 지식재산권 침해는 예술에 대한 업신여김 때문”이라며 “예술가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내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페로딘(65)은 “내 디자인 프로젝트를 건물 외장에 무단 도용했다”며 지난해부터 경기도 김포의 한 병원에 대해 형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작가 측은 본지 통화에서 “창작자인 작가에게 일언반구도 없었고 인터넷 검색 도중 알게 됐다”며 “저작권 인식 제고를 위해 엄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법이 지난달부터 ‘공익 침해 행위’ 대상에 추가되면서, 앞으로는 저작권자 아닌 제3자도 침해 사실을 신고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