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가해자를 가해한다.
양아치들이 두들겨 맞고 질질 짜는 장면이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힘 약한 동급생을 괴롭히며 즐거워하던 이들은 패배감에 죽상이 된 얼굴로 전국적 망신을 당하고, 이를 기꺼워하는 실시간 댓글이 빗발친다. “미친놈은 미친놈이 잡아야지.” 웹툰 ‘싸이코 리벤지’는 일견 왜소해 보이는 고교생이 복면 조직을 꾸려 학교 폭력 주동자, 이른바 ‘일진’ 무리를 소탕하는 줄거리다. 이 왜곡된 히어로는 학교 폭력을 범죄로 규정한 뒤 무자비한 응징을 자행한다. 반성하지 않는 자는 그저 때려잡아야 한다는 논리다.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 일진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 한 독자는 댓글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는 웹툰 매체를 통한 인식 변화 시도를 응원한다”고 썼다.
학교 폭력 가해자를 역(逆)으로 물리 치료하는 웹툰 속 판타지가 잇따르고 있다. 이른바 ‘가해자 가해’ 웹툰이다. 최근 유명인의 과거 학교 폭력 논란이 연일 터져 나오면서, 이 같은 웹툰도 함께 각광받고 있다. 그간의 학원물이 꺼드럭대는 강자의 힘 대결을 미화하는 양상이었다면, 이제 약자의 반격이 대세가 된 것이다. 시즌3까지 연재 중인 웹툰 ‘약한 영웅’은 키 160㎝에 몸무게 50㎏ 수준의 허약 체질 고교생이 순간적 기지로 나쁜 놈들에게 피 맛을 안기는 스토리이고, 웹툰 ‘지옥급식’은 힘의 논리로만 작동하는 ‘똥통 학교’에 오게 된 전학생이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능 낮은 폭력 성향의 학생들을 하나하나 깨부수는 내용이다. 웹툰이 판타지를 통해 현실의 대리 만족 기능을 수행하는 장르라는 점에서 이 같은 흐름은 설명 가능하다.
최근 속출하는 익명의 폭로는 여전히 학교에 폭력이 만연하며, 피해자의 고통이 졸업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11월 완결된 웹툰 ‘인생존망’은 학교 폭력으로 꿈을 잃고 말까지 더듬게 된 주인공이 졸업 후 우연히 가해자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가해자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미안하다”며 지폐 몇 장을 건네고, 주인공은 “사과를 당했다”고 수치스러워하며 달아나다 추락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학창 시절로 돌아간 주인공의 몸속에 가해자의 영혼이 들어가는 저주가 발동한다. 저주를 풀려면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복기하며 갱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웹툰은 “사람을 대하는 법”까지 잃는 피해자의 지독한 후유증을 드러낸다. “하지만 너희는 끝까지 악마였지….”
일련의 웹툰은 전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고 있다. 10대가 가장 많이 접속하는 웹툰 플랫폼이다. 세종대 한창완 교수는 “독자로 하여금 약자와 함께 분노하게 하다가 조력자나 히어로를 등장시키는 서사는 팬덤 조성에 용이한 전략”이라며 “폭력에 대응하는 폭력은 폭력이 아닌 것으로 고정관념화 돼 있기에 가능한 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