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나체로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등산용 벨트 하나가 위태로운 안전을 가까스로 지탱한다. 이윽고 여자는 입을 열어 시(詩)를 읊는다. “어느 한 순간 세계의 모든 음모가/ 한꺼번에 불타오르고/ 우연히 발을 잘못 디딜 때/ 터지는 지뢰처럼 꿈도 도처에서 폭발한다.” 피 쏠린 얼굴과 눈자위 탓에, 이것은 낭송이라기보다 비명처럼 들린다.
설치미술가 이불(57)씨가 1989년 벌인 ‘낙태’ 퍼포먼스는 당대 여성이 반강제로 감내했던 수난의 가학적 고백이다. 이 살벌한 영상 속에서 그가 겨우 소리 내 읽는 최승자 시인의 시 ‘내가 너를 너라고 부를 수 없는 곳에서’는 행위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힌트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5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불 개인전 ‘시작’은 작가가 활동을 시작한 1987년부터 10여 년간의 퍼포먼스를 영상과 사진으로 진열한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등 최정상급 무대에 단골로 오르는 한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로 도약하기 전, 기행(奇行)에 가까운 그의 파격적 시작을 시작(詩作)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
주목할 지점은 이불이 최승자의 시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지난 2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불은 “그 시기에 최승자의 시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시집 ‘이 시대의 사랑’ 등을 통해 1980년대 여성 화자의 자조와 파괴된 사랑의 독백을 선보인 최승자, 그의 피학적 운율은 여성주의로 해석되곤 하는 이불의 몸짓에 깊이 스며있다. 1989년 레슬러 복장의 이불은 소리가 심하게 울리는 마이크에 대고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를 낭독한다. “깨고 싶어/ 부수고 싶어/ 울부짖고 싶어–.” 시는 이 퍼포먼스 ‘무제’를 포함한 작가의 모든 태도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명료한 텍스트를 모호하게 하려고 알아듣기 힘든 음성으로 발화했다”고 말했다.
촉수가 덜렁덜렁한 괴물 탈을 입은 채 12일간 일본 도쿄를 배회하며 현지 행인의 눈길과 반응을 유도하는 1990년 퍼포먼스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는 부제를 최승자의 시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의 문장에서 따왔다. 공항과 대학가와 기차역에서 쏟아지는 견고한 시선을 괴짜처럼 누비며 도발한다. 시구 “내 인생의 꽁무니를 붙잡고 뒤에서 신나게 흔들어대는 모든 아버지들아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를 떠올리게 한다.
이때 이불의 퍼포먼스가 뿜어내는 일관된 정서는 가부장제에서 무례하게 규정된 20세기의 여성성, 울분이다. 그러나 이 부정의 에너지는 체념 대신 독한 희망의 승화로 나아간다. 이를테면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 전시에 출품한 ‘장엄한 광채’는 몸통에 수놓은 날생선을 유리장 안에 넣어 썩은 내가 진동하게 한 설치작이다. 악취와 부패 이후 발현되는 존재의 진정한 면모(뼈다귀)를 이야기한다. 최승자 역시 자신의 시에 대해 “그 부정(否定)이 아무리 난폭하고 파괴적인 형태를 띤다 할지라도 그것은 동시에 꿈꾸는 건강한 힘”이라고 쓴 바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작가의 전신이 그려진 10m짜리 거대 풍선 ‘히드라’가 놓여있다. 1996년 처음 선보인 것으로, 관람객이 발펌프를 수만번 밟아야 부풀어 온전한 형체를 갖는다. 최승자의 시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를 기억나게 한다. “짓밟기를 잘하는 아버지의 두 발”을 이기고 부활하는 “나는 내 피의 튀어오르는 용수철로 싸웠다”는 진술처럼, 여자가 밟힐수록 거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