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값을 올려놨네. 오히려 돈 받아야할듯.”
지난 28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전시장에 걸려있던 미국 화가 존원(58)의 그림이 훼손돼 경찰이 출동했다. 누군가 허락없이 그림에 물감을 덧칠한 흔적이 뒤늦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전시 주최 측이 곧장 CCTV를 돌려본 바, 이날 오후 1시 40분쯤 방문한 한 남녀 커플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이튿날 이 사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자 의외의 반응이 쏟아졌다. 낙서 탓에 기존보다 그림이 더 좋아졌다는 댓글이 속출한 것이다.
해당 그림은 6월까지 열리는 전시 ‘스트리트 노이즈’ 출품작으로, 얼핏 담벼락 낙서처럼 보이는 그래피티(Graffiti) 작품이다. 존원이 2016년 내한해 그린 가로 700㎝·세로 240㎝ 규모의 이 대형 회화에는 물감을 쏟거나 붓을 무작위로 캔버스 위에 휘두르는 이른바 ‘액션 페인팅’ 기법 등이 사용돼 우연성이 적극 반영됐다. 고도의 정밀성과 완결성을 목표로 한 그림은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그림 앞에는 전시 소품으로 붓과 물감이 놓여있었다. 전시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작품에 손 대지 않는 것이 관례지만 이 커플은 과감히 붓을 집어들어 초록 물감을 묻혀 화면에 발랐다. 그러자 사람 형상같은 획 몇 개가 더해졌다. 천편일률적이던 추상화에 구상(具象)이 주는 어떤 생동감이 깃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한 네티즌은 이를 보고 “낙서 부분이 마치 세 사람이 발레하는 것 같다”며 “이런 게 현대미술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림 가격은 5억원 수준으로 책정돼있다.
이 커플은 “벽에 낙서가 돼 있고 붓과 페인트가 있다 보니 낙서를 해도 되는 줄 알았다”고 경찰에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최 측은 훼손에 고의성이 없다고 보고 이들을 선처할 방침이다. 전시 관계자는 “이제 갓 스무살 된 어린 친구들이기에 작가 측에 소송이나 보험처리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안했다”고 말했다.
‘훼손’된 그림은 지금도 전시장에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