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NFT 시장은 어떤 체계도 없는 난장판으로 보인다.”
한국 작가의 그림 한 점 가격이 7만이더리움(ETH)으로 책정됐다. 21일부터 3일간 열리는 아시아 최대 미술 장터 아트바젤 홍콩에 출품된 코디최(60)씨의 디지털 회화 ‘Animal Totem–Stolen Data–Tiger #00’가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파일로 전환돼 NFT 경매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것이다. 구매는 이더리움으로만 가능하고, 7만이더리움은 현재 시세로 2000억원에 달한다. 비정상적인 숫자지만, 의도된 논란이다. 최씨는 20일 본지 통화에서 “황당한 가격표를 붙임으로써 실체 없는 NFT의 숫자 장난에 놀아나는 미술계를 풍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2017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 유명 작가다. 1990년대부터 데이터 기반 회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는데, 서울 PKM갤러리를 통해 출품된 이번 작품의 경우 그가 1997년부터 컴퓨터에 저장된 작은 이미지를 3년간 수백 차례 확대하는 과정을 거친 뒤 이를 겹쳐 색과 형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디지털 아트는 데이터 중첩에 의한 증식이 핵심이지만 지금 ‘NFT 미술'로 불리는 그림들은 이와 관련없이 그저 실물을 스캔해 컴퓨터로 옮기거나 디지털 펜으로 그려내는 테크닉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아무리 넓게 봐도 디지털 아트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렇게 엉망인데도 돈의 액수가 커지니 너나 없이 팔아먹으려 달려든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젊은 작가들 미래가 어떻게 되겠나.”
NFT는 특정 디지털 파일에 대한 소유권을 위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형태로 발행·보관하는 형식을 의미한다. 미국 작가 비플(40)이 이미지 모자이크 파일을 NFT로 제작한 ‘매일: 첫 5000일’이 지난 3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772억원에 낙찰되며 본격 지진을 일으켰다. 생존 작가의 경매 낙찰가 3위 기록이다. 이후 영국 데이미언 허스트, 일본 무라카미 다카시 등 내로라하는 현대미술 거물들이 잇따라 NFT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작품은 실물 없이 컴퓨터 파일 상태로만 존재하기에 ‘원본성’이라는 상징 하나로 이 같은 초고가 행진이 합당한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끊이지 않는다. 세계에서 둘째로 비싼 생존 화가인 데이비드 호크니(83) 역시 NFT 광풍에 대해 “조금 어리석은 짓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NFT는 그러나 지속적으로 미술 시장 내부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번 아트바젤 홍콩은 오라오라갤러리(홍콩)가 중국 작가 펑 지안 등의 작품을 NFT로 제작해 판매하고 결제 수단으로 현금뿐 아니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허용키로 하는 등 최근 빠르게 변화한 미술계 양상을 보여주는 실험장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