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술관’이 서울에 들어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7일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 방안’을 발표해 “서울 송현동과 용산으로 미술관 건립 후보지를 압축했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인근에 있어 연관 분야와의 활발한 교류 협력과 상승 효과가 기대되는 입지”라는 설명이다. 미술관 명칭은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관’(가칭)으로 정해졌고, 개관 시점은 2028년쯤이 될 전망이다.
지난 4월 이 회장의 소장품 2만3000여점이 나라에 기증됐고, 이후 “별도 전시실이나 특별관 설치 방안을 검토하라”는 대통령의 언급이 나오면서 전국 지자체 40여곳이 유치전을 벌인 바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 황희 장관은 “지방으로 결정되면 어디가 선정돼도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접근성과 관광산업 활성화를 고려해 정말 어렵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신 “지역 거점 미술관·박물관 순회 전시를 통해 지방의 문화 향유권도 챙기겠다”는 방침이다.
◇“서울 중심에 젊은이들 찾기 쉬운 곳”… 송현동 유력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관’ 후보지는 두 곳이지만, 벌써부터 서울 송현동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 김영나 위원장(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7일 브리핑에서 “송현동이 더 장점이 많다”며 “도시 중심이라 따로 진입로를 만들 필요가 없는 데다 젊은이들도 와서 많이 즐기는 곳”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송현동이 최적합지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송현동(48-9번지) 터는 대한항공에서 서울시로 소유권 이전이 예정돼 있고, 용산(용산6가 168-6번지)은 국립중앙박물관 앞 문체부 소유 땅이다. 황희 장관은 “땅 매입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며 “건립 예산은 1000억원 이상”이라고 말했다.
자리가 서울로 결정되자,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에서는 격앙된 반응이 빗발쳤다. 부산시는 이날 보도 자료를 내 “문화 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 차원에서 지역 유치를 요구한 지역에 대한 무시”라며 “대한민국은 ‘수도권 일극주의’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화 분권 및 균형 발전 정책 기조에 역행하는 처사”(대구시) “문화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시대적 요구 외면”(진주시) 등의 반발도 확산 추세다. 국민의힘 부산·울산·경남 지역 의원 31명은 “국회는 세종으로 옮기겠다면서 미술관은 서울에 집중시키겠다는 것인가”라는 내용의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이건희 소장품관’은 고미술부터 근현대 작품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박물관·미술관 통섭형을 표방한다. 그러나 정작 유족 측은 작품 시기·성격별로 구분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분산 기증했기에, 소장품 2만3000여 점을 다시 한 공간에 몰아넣는 이번 결정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미술계 일각에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요구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문체부 측은 “기증품을 나눠 놓으면 기증자 이름이 묻힐 수 있는 데다, 한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게 장르와 시대를 가리지 않는 ‘이건희 컬렉션’의 철학을 살리고 기증 문화 활성화에도 기여한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유족 측 의견 청취 절차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황 장관은 “그럴 필요가 있느냐”며 “유족은 조건 없이 기증했고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다만 지역 미술관으로 들어간 ‘이건희 컬렉션’ 작품은 소장처를 현 상태로 유지할 계획이다. “로컬(지방)에 기증한 것은 지역 작가 연구 등을 위한 목적도 있기에 그것까지 통합해버리면 기증 취지에 위배될 것”이라고 했다.
신설되는 ‘이건희 소장품관’의 운영 주체 및 방안은 위원회 토의를 통해 정리될 방침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종전에 없는 통섭형 전시장을 추구하는 만큼 독립적 운영 권한을 부여하되 기존 미술관·박물관과 긴밀히 연계하는 방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21일 ‘국가 기증 이건희 기증품 특별 공개전’이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동시 개막한다. 추후 삼성미술관 리움 등과의 교류 전시 사업,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스페인 프라도미술관 등 해외 전시도 추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