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이 드디어 진면목을 드러낸다. 핵심 작품 130여 점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에서 21일부터 동시 공개된다. 이건희(1942~2020) 삼성그룹 회장의 개인 소장 미술품 2만3000여 점이 양 기관에 분산 기증됐고, 분류·연구 과정을 거쳐 본격 전시로 구현된 것이다. 전시는 무료. 전 국민적 기대치를 반영하듯 우선 예약 개시와 동시에 이달치 티켓이 전부 마감됐다. 예약 신청은 양 기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초특급 국보·보물 한 자리에
“뭘 좋아하실지 몰라 성찬(盛饌)으로 준비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보물 28건을 포함한 명품 77점을 내보인다. 청동기 칼부터 조선 민화까지 시대·장르를 망라하는 보화의 향연이다. 초기 철기시대 권력의 상징 ‘청동 방울’(국보 255호), 삼국시대 금동불의 정수 ‘일광삼존상’(국보 134호), 현존 유일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 15세기 훈민정음 표기법과 서체가 오롯한 ‘월인석보 11·12권’(보물 935호), 단원 김홍도가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보물 1393호)….
백미는 단연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다. 박물관은 “너무 유명하기에 더 풍부한 해석을 제공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인왕제색도’를 위한 인왕산 특별 영상이 전시장 입구에서 98인치 대형 TV 화면으로 상영되고, 육안으로는 어려운 고려 불화의 세부 관람을 돕기 위해 적외선 및 X선 촬영본이 담긴 터치스크린이 비치돼있다. “‘이건희 컬렉션'을 향한 호기심이 더 깊은 문화적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9월 26일까지.
◇교과서에서 보던 근현대 걸작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34인의 주요작 58점을 앞세웠다. 김환기·나혜석·문신·이응노·천경자 등 근현대미술사(史)를 대표하는 면면이다. 일제강점기 전통 서화의 변화(변관식 ‘금강산 구룡폭’), 광복 후 발아한 한국미술의 근간(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국내외에서 잇따른 창조적 모색(이성자 ‘천년의 고가’) 등의 흐름을 보여준다. 김환기 그림 중 최대 규모인 ‘여인들과 항아리’(281.5x567㎝)를 중심으로, 김은호·김기창·채용신·이중섭·권진규·유영국 등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들이 라인업을 구축했다. 서양 대표 화가 8인의 작품은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화 대가 이상범의 ‘무릉도원’과 1세대 여성 서양화가 백남순의 ‘낙원’을 마주 보게 배치하는 등 스토리텔링에도 신경 썼다. 조선일보 주최 ‘전국학생미술전람회’ 최고상으로 장욱진을 화단에 입성케 한 그림 ‘공기놀이’ 옆에는 이와 유사한 꼬마들을 그린 박상옥의 초기작 ‘유동’(遊童)이 놓여있다. 미술관에 따르면, 박상옥은 장욱진의 ‘공기놀이’를 오래 소장하고 있던 인물이다. 사연 없는 그림이 없다. 내년 3월 1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