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후원 방식이라 생각해달라.”
국보 70호 ‘훈민정음’이 NFT로 제작·판매된다는 본지 단독 보도<7월 22일 A1면> 이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소장처인 간송미술관 측이 ‘훈민정음 NFT’를 만들어 개당 1억원씩 100명에게 한정 판매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내용 때문이다. 전인건(50) 간송미술관장은 본지 통화에서 “새 기술을 통해 젊은 세대(MZ)를 후원회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1000명 규모의 후원회 중심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상황에서 새 시장(NFT)으로 관심을 환기해 미래 도모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전 관장은 이번 사업을 위해 별도 법인 헤리티지아트㈜까지 설립했고, 아트센터나비 등과도 협업해 디지털 미디어아트 분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NFT(Non Fungible Token·대체불가토큰)는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디지털 자산으로, 국보가 실물(實物) 아닌 NFT 로 거래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반응은 “돈 벌자고 민족적 상징인 훈민정음을 혼탁한 NFT 시장에 끌어들이느냐”는 비판론과 “사립미술관 운영을 위한 자구책”이라는 옹호론으로 극명히 나뉜다. 주무부처인 문화재청도 당혹스러운 입장이다. 관계자는 “훈민정음의 공공재적 성격을 감안해도 엄연히 사유재산인 데다 NFT 제작이 문화재를 물리적으로 훼손하지 않기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향후 유사 사례를 대비한 제도적 보완점을 연구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간송미술관은 수집가 간송 전형필이 1938년 세운 보화각을 전신으로 하는 우리나라 첫 사립 미술관이고, 재정난은 모든 사립 미술관의 숙명과 같다. 지난해 금동여래입상·금동보살입상 보물 두 점을 경매에 내놓아 업계에 큰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전 관장은 “재원은 늘 필요하지만 우리가 망해서 이것저것 팔아넘긴다는 식의 해석은 옳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모기업 없이 운영하다 보니 지출과 수입의 만성적 불균형이 있어 구조조정이 필요했다”며 “서화·도자기·전적류 쪽에 역량이 집중된 상황에서 연구 성과나 수량이 적은 불교미술 쪽을 매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당시 경매는 유찰됐고,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30억원을 밑도는 가격으로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훈민정음 NFT’가 전부 팔리면 100억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전 관장은 “‘훈민정음 NFT’ 추진은 K팝으로 점화된 우리 문화와 한글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훈민정음으로 넓히려는 목적도 있다”며 “외국인에게도 구매 기회를 열어뒀다”고 했다. 간송 측은 훈민정음을 시작으로 또 다른 국보·보물의 NFT 제작도 예고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NFT 시장의 혼탁 양상을 우려하고 있다. 확장 추세지만, 부작용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술법 전문가 캐슬린 김 변호사는 “판매된 ‘훈민정음 NFT’가 향후 2차 매물로 나와 황당한 가격에 거래되는 등의 예기치 못한 잡음이 불거질 수 있다”며 “문화유산의 NFT화가 물꼬를 튼 만큼 이번 계기로 질서 마련을 위한 법제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