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진작)은 소정 변관식이 1963년 부산 여행 당시 그린 산수화로, 화풍·글씨·낙관까지 완벽히 갖췄다. 아래 그림(위작)은 인물 및 풍경 묘사가 획일적인 데다 제작 시기·장소가 없고 질 낮은 인주를 사용해 낙관도 흐려졌다. /성균관대박물관

진짜 같다는 것은 가짜라는 뜻이다. 보통 눈썰미로는 못 가린다.

한국화 거장 소정 변관식(1899~1976)의 산수화 두 점이 전시장에 위아래로 걸려 있다. 위는 진짜, 아래는 진짜 같은 가짜다. 특유의 거친 붓질 산세를 드러내고, 어김없이 황포(黃布) 노인도 등장하며, 구도도 유사하다. 그러나 위 그림에는 1963년 가을 부산에서 그렸다고 기록한 반면, 아래 그림에는 제작 시기와 장소가 없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인장(印章). 위 그림에는 선명한 붉은 인장이 아래 그림에서는 흐릿하게 날아갔기 때문이다. 성균관대박물관 김대식 학예실장은 “당시 최고급 인주만 사용했던 소정의 인장이 이 작품에서만 이토록 흐려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시간이 지나 자연히 진위(眞僞)가 밝혀진 셈”이라고 말했다. 위작은 어느 미술평론가의 소장품으로 “수십 년 전 비싼 값에 산 그림”이라 한다.

백범 김구의 1947년 글씨 '幸福' 원작을 인쇄한 뒤 낙관한 위작. /성균관대박물관

미술계의 영원한 숙제, 진위 문제를 다루며 진작과 위작을 나란히 놓은 흥미로운 전시 ‘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가 서울 성균관대박물관에서 내년 3월까지 열린다. 따라했다고 전부 가짜는 아니다. 옛것을 따라 그리는 임모(臨模)는 동양 미술에서 득도를 위한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순한 의도가 개입한 순간 그것은 여지없는 ‘짝퉁’이 된다. 1954년 누군가 붓으로 흉내내 낙관까지 찍은 해공 신익희의 붓글씨가 그 사례로 진열돼있다. 위조 방식은 가지각색. 백범 김구의 붓글씨는 명성 덕에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백범이 1947년 쓴 ‘幸福’(행복)이라는 글씨 위작이 걸려있는데, 특이한 점은 붓으로 따라 쓴 게 아니라 한지 위에 진하게 인쇄한 뒤 낙관을 찍어 표구했다는 점이다.

감식안(鑑識眼)이 필요하다. 이번 전시는 한국 근대 최고 수준의 수집가 위창 오세창(1864~1953)을 통해 ‘작품 보는 눈’에 대해 살핀다. 조선 시대 미술을 작가별로 추려 ‘근역서화징’을 저술하는 등 당대를 풍미한 명품 감별사이자 서예가였던 위창의 감정 지론은 ‘기준작’과 ‘집단 지성’으로 요약된다. 작가의 기준작(대표작)을 확실히 익히면, 그 모범적 특징을 근거로 위작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 말부터 근대까지 명필 1136인의 글씨를 한 점씩 모은 ‘근묵’, 문인 850인의 작품 속 인장만을 따로 오려 묶은 ‘근역인수’ 등을 위창이 발간한 이유다. 이 같은 기준에 바탕해 안료·종이·글씨 등 각 분야 전문가가 모여 탁견을 나눌 때 감정은 완결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청나라 대문인 옹방강에 대해 쓴 시(詩). 곳곳에 수정 흔적이 보이는 초고지만, 의아하게도 글 말미에 낙관이 보인다. 추사가 아닌 후대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찍은 것이다. /성균관대박물관

완벽한 진짜지만 후대의 실수(?) 탓에 가짜가 될 뻔한 경우도 있다. 1812년 추사 김정희는 스승이자 청나라 대학자인 옹방강에게 편지를 쓴 뒤, 청나라 연경으로 향하던 신위 편에 건넸다. 이와 함께 옹방강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 도움될 내용을 짧은 시로 적어 전해줬는데, 이 편지 초고(草稿)의 존재가 1990년대 알려졌다. 의아한 점은 수정 흔적 가득한 초고 말미에 추사의 인장이 찍혀있다는 것이다. 박물관 측은 “작품 아닌 개인 서신에 낙관을 하는 경우는 없다”며 “후손이 다른 목적으로 나중에 추사의 인장을 찍은 것 같다”고 했다. 손대지 않았다면 틀림없는 추사의 귀한 사료로 숭상됐겠지만, 별안간 위작 꼬리표가 달려버린 것이다. 낙관만 도려내 표구할 수도 있었지만 박물관은 “교훈을 주기 위해” 현 상태 그대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작품 명찰에는 위작을 의미하는 빨간 딱지가 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