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그래서 이육사.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였고 저항 시인이었으며 조선일보 기자였던 이육사(1904~1944)를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전시 ‘264, 내가 바라는 손님’이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열린다. 작가 14인이 참여해 그림·영상·설치미술 등으로 그를 다시 불러낸 것이다. 열일곱 번의 옥살이를 거치며 독립 염원의 강렬한 시편을 남긴 이육사. 264는 첫 수감 당시 수인번호다.
‘청포도’는 그 대표작이라 할 것이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해 나라 잃은 자의 향수(鄕愁)를 드러내면서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라는 내일의 간절한 기다림으로 나아가는 이 시를 서예가 황석봉(74)씨는 서화 ‘내 고장 칠월’로 그려냈다. 황씨는 “그림 배경에 쓴 ‘청포도’ 전문은 고초 속의 갈망을 드러내려 붓 대신 뾰족한 나무에 물감을 묻혀 썼다”고 말했다.
이육사를 둘러싼 주변 인물도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화가 윤석남(82)씨는 여성 독립운동가 이병희(1918~2012)의 초상을 출품했다. 이육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고 이후 이육사의 유품을 수습해 유족에게 전한 인물로, 이육사의 귀한 시고(詩稿)는 그 덕에 보존될 수 있었다. 이육사 모친 허길(1876~1942), 외동딸 이옥비(80) 여사도 한 점의 초상화가 돼 놓였다.
해방 1년을 앞두고 이육사는 베이징 지하 감옥에서 순국했다. 그가 만나지 못한 광복을 후손이 완성한다. 화가 권순왕(53)씨는 이곳을 답사해 사진 찍은 뒤 물감을 덧대 ‘베이징에서 청포도를 보다’를 그렸고, 화가 안두진(47)씨는 바람에 부러진 나뭇가지를 철사로 고정한 뒤, 그 위에 인조 매화(梅花)를 달아놓았다. 시 ‘광야’를 연상케 하는 이 ‘죽지 않는 나무’가 전시장 천장에 걸려있다. 안씨는 “집 앞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보고 어떻게든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 만든 작품”이라며 “당시 이육사가 시를 쓰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매화 일곱 송이가 북두칠성처럼 빛나고 있다. 9월 2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