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만에 그린 그림, 화가는 30억원의 가격을 책정했다.
300호(300x200㎝) 크기의 캔버스를 화가 김길후(60)씨는 거의 일필휘지로 채운다.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물감이 마르기 전에 완성한다. 내 회화의 핵심은 속도다. 바람이 불어 구름을 빚듯 그 자연스러움을 위해 무아지경으로 붓을 휘두르는 것이다.” 자아의 개입을 물리친 채 그려낸 추상화 20점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22일까지 전시된다.
그림값이 상식적인 수준은 아니다. 그는 이른바 유명 화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생존 화가 중 가장 비싼 이우환(85)의 그림도 경매 최고가가 22억원이다. “30분 만에 그린 게 뭐 이렇게 비싸냐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그리기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며 “가격은 내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대작(大作) 위주로 작업하는 이유도 “붓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결기에서 왔다.
그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본 건 중국이었다. 베네치아비엔날레 중국관 감독을 지낸 왕춘첸(王春辰)의 기획으로, 2014년 베이징 유명 화랑 화이트박스 아트센터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당시에도 그림값을 100만 달러(150호) 선으로 매겼고, 판매도 이뤄졌다. 세계무대에서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서울 전시장에도 당시 출품한 그림 한 점이 걸려있다. 2년간 물감을 손으로 문대고 화면을 사포로 갈아가며 제작한 미륵 얼굴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화풍”이라며 “창작은 끝없는 변화와 도전”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불혹을 앞둔 1999년 자신의 그림 1만여 점을 불태웠다. “기술자 대신 예술가가 되고자 했다.” 다 태우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 본명마저 버렸다. 7년 전 티베트 승려가 지어준 현재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광명을 뜻한다”고 했다. 올해 그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